세상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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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2.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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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 에세이 ‘길 위에서’ (8)

요즈음 내 가슴을 울려준 두 마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입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은 계향입니다.’ 얼마 전 걸었던 제주불교순례길 오프닝 멘트였다.
친절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아름다운 절도, 어떤 영험한 도량도 친절하지 않으면 가고 싶지 않다. 중생심이라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초라하고 허름한 암자라 할지라도 친절하면 가고 싶다. 친절만으로도 꽁꽁 언 마음이 사르르 녹을 것 같고, 잔뜩 주눅 들었던 마음이라 할지라도 기를 쭉 펼 수 있을 것 같다. 
지계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 편하게 생각하면 도리를 다 하고 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어진 자리와 역할에 따라 도리를 다하고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을 지계라 하면 무리일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를 계향이라 한다. 어떤 향기로운 꽃도 바람에 의지하지 않고는 향기를 뿜어낼 수 없지만 계율을 지켜 사는 사람의 향기는 바람에 의지하지 않고도 천리만리 퍼져 우주를 가득 채운다하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이 틀림없다. 며칠 전 둔지 오름 정상에서 만난 오름 지기 고승사, 그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라는 친절을 지키고 있는 주지이다. 그는 한 평 남짓한 작은 초소를 약이 되는 법구들로 도배를 해 놓고 오름 나그네들을 기다린다. 그야말로 초소형 법당을 연상하게 한다. 그 가운데 하나만 살짝 보여 드린다. 나머지는 올라가서 보시기 바란다.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에 살아도 삶이 평화스럽고, 성품이 바로 잡혀 있으면 나물국을 먹어도 그 맛이 향기롭다.” 계향이 느껴지는 법구다.
  
 그의 업무는 탐방객들이 정상에 다다르자마자 큰소리로 환영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탐방객을 맞은 백발의 오름 지기는 자랑 거리가 참 많다. 그가 타 주는 잔치커피 한 잔을 받아들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사가 줄줄이 줄줄이 풀려나온다. 그야말로 고승사열전이다. 103살의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는 77세 노인의 자랑이 밉지 않은 것은 그가 계를 지켜 사는 사람이고 친절의 주지이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그의 친절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혹시 살다가 인생에 훈수가 필요하다면 둔지 오름 고승사에 가보시기를 권한다. 정말로 친절한 암자 하나 거기에 있다. 게다가 노장의 훈수는 삶에서 녹아난 것이니 소화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입과 귀를 쉬게 하고 싶어 올라갔다거나, 정말 시간이 없다면(앉으면 쉽게 못 일어난다.) 그저 꾸벅 인사만 하고 편백나무 둘레길을 조용히 돌아 나오면 될 것이다. 지금 한창 황금빛으로 물든 편백나무 잎들이 아름다운 황금 길을 만들어 놓았다. 비록 계향까지는 아니지만 편백 향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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