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에세이 - 처음 간 일본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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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에세이 - 처음 간 일본 탐방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2.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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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필목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대망”을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쇼쿤의 재목으로 교육받고 성장한다. 그가 가장 극복해야 할 부분은 인내였다. 모든 구차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계속 미뤄오던 일본 여행을 한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시도였다. 36년간의 뼈아픈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우리 부모들이 4‧3을 피하여, 동란을 피하여 밀항하여 들어갔던 곳이 그 나라이다. 조센징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오욕의 기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숨소리를 죽여야 했다. 물론 시대는 변하여 글로벌시대에 발맞춰야 하겠으나 그냥 잊기에는 분명 아픈 역사이다. 
일본은 본래 전국시대였다. 1467~1568년까지 밤낮없이 싸움이 계속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황으로부터 세이이타쇼쿤에 임명된 게이츠 8년(1603)부터 15대 쇼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조정과 정권을 반환한 게이츠3년(1867)까지 264년 동안이 에도시대이다. 이 난세를 끝내고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어가는 이야기가 “대망”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덟 살 때 부친이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살해당하는 일을 겪는다. 
그 후 볼모로 멀리 스루가로 유배되는데, 이 불모시절부터 인종(忍從)의 첫발은 시작된다. 그는 가난한 가신들이 굶주리며 마련해 보내주는 옷을 입고, 센사이 선사의 도움으로 ‘대장훈련’을 받는다. 때문에 그에게 근면절약은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오다노부나가가 죽고 약삭빠른 히데요시에게 순서를 빼앗기지만 천하의 형세를 내다 본 그는 자신을 억누르고 히데요시에게 굽히고 들어가 태평성대를 위해 일했다. 둥글둥글한 생김새의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마음으로 조용히 관조했다. 
3박4일간의 여정이 끝났다. 처음 하는 가족여행이었고, 일본여행이었다. 적응이 되고 보니 거의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 서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어도 편안하다. 문화적으로 동양이라 그런지 비슷한 것이 많다. 우리나라가 발전도상국으로서 일본을 본 딴 것이 많으리라. 역사적으로 치욕의 기억만 없다면 충분히 친화적일 수 있을 텐데……. 
인천국제공항은 다른 나라 공항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하 레일을 타고 이동 후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도 평소 육지 갈 때 탔던 비행기와 다름없고 소요시간 역시 한 시간 남짓 걸리기 때문이다. 아무런 부담감이 없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셔틀버스로 국내선으로 이동하는데 철창문을 여러 개 통과하여 한참을 간다. 국내선에서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지하철을 타고 불과 두세 정거장을 가면 하카타역이다. 주변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둘째 날 기차를 타고 벳푸로 갔다가, 이때 레일패스를 끊으면 편리한데 3일권은 10회까지 탑승할 수 있으며 금액은 8500엔이고, 5일권은 16회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역앞에 대기중인 셔틀버스를 탔는데 언덕 높이 도착한 곳이 수지노이 호텔이다. 나름 유명하고 큰 호텔 같은데 마치 우리나라 부곡하와이 수준이다.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관광지하고는 격리된 분위기다. 내부가 넓기는 하지만 온천 역시 우리나라 야외 풀장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식당가와 온천장은 객실과 한참 거리를 두고 있는데 가는 길이 사뭇 상업적이다. 많은 상점들을 거쳐야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날 레일패스를 이용하여 유후인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몽상원(일본식 발음은 무소옌)으로 갔다. 
일본식 건물에 다다미방이다. 이곳에서야 일본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노천온천이 평소 사진에서 보던 일본 온천이었다. 우리 일행은 인원이 많아 객실이 비쌌지만 2인실의 경우 저렴한 숙소도 있다고 한다. 일정을 정리하다보니 굳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없이 곧바로 유후인에 와서 쉬다가는 것도 좋을 듯하였다. 
일본을 다니며 우리와 다르다고 느낀 것은 우선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학생, 직장인, 숙녀 모두가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인도를 다닐 때도 항상 한쪽으로 비켜서 다녀야 한다. 
또한 식당이나 숙소 등 모든 공간은 한국에 비하여 협소한 편이다. 때문에 식사를 할 때도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식사를 마치면 바로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한다.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정식집에 들어갔는데 일본 현지인들도 꽤 많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 규모에 비해 음식이 정갈하다. 이유인즉 일본은 매상액이 일정액에 도달하지 못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입주할 때 프리미엄만 넉넉히 쳐주고 개업 후에는 마음대로 운영하는 우리와는 그 방식이 달랐다. 숙소도 수준에 비하여 협소한 편이지만 꼭 필요한 공간만 활용되고 있다. 우선 화장실은 마치 벽장 같은 곳에 변기가 하나 놓여 있다. 전용 실내화가 있지만 마치 방 한구석 같아서 남자나 여자나 성심성의껏 볼 일을 봐야 한다. 정말로 화장을 하는 화장실이 따로 있고 그 안쪽에 욕탕이 있다. 물론 탕도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는 크기다. 반쯤 누울 수 있는 우리네 욕조하고 조금 다르다. 온천 샤워장에 있는 샤워기의 길이도 서면 겨우 가슴까지 씻을 수 있는 정도이다. 옆 사람에게 전혀 피해가 가지 않는 길이다. 이런 작은 배려들이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도시의 분위기 역시 항상 정돈되고 가라앉은 느낌이다. 시외버스 승강장도 건물 출입문마다 번호가 붙어있다. 사람들은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닥에 그려진 줄 위에 서 있다가 버스가 도착하면 문을 열고 나가서 승차하게 된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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