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말과 침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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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말과 침묵 사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2.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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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침묵은 명상에 잠긴 마음 상태이다. 둘 다 마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음이 먼저 결정하고 말과 침묵으로 나타난다.
  부처님께서 “인간이란 자기 자신이 지은 생각의 주물공장에서 스스로 찍어낸 작품일 따름이다.”고 말했다. 말과 행동에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는 뜻이다. 
  내가 즐겨 읽는 경전의 하나인 『숫따니빠따』에는 ‘입안의 도끼를 조심하라.’라는 경구가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그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2600여 년이 지났지만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무심코 던진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날카로운 혀를 함부로 놀려 화禍를 자초하기도 한다.
  착한 이들은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삼간다.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꽃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거짓말은 탐욕에, 거칠고 사나운 말은 성냄에 각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말과 마음의 상호 의존 관계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일찍 자고, 새들보다 먼저 일어나 눈을 감고 어김없이 어제 했던 말들을 되새기며 반성해 본다. 실수한 건 없었는지, 혹시 자만하였거나, 거짓말하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았는지를.
  내 직업이 변호사라서 말을 많이 해야 남에게 인정받은 거라는 믿음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의 말을 잘 들어야만 하는데 상대가 건네는 말에 맞장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물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곤 한다. 
  의뢰인과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가 된여울과 같을 때가 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러다보니 가능한 한 말을 줄이고 실수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방어 모드에 돌입하는 심리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편이 아니었다. 직설적이고 곧이곧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남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뭔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겁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침묵에 눈을 뜬 것은 명상의 깊이와 너비를 알면서부터다. 
  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명상의 바다에 빠지면 말이 끊기고 침묵이 길을 연다. 지혜로운 이는 말과 침묵을 가린다. 향기로운 이는 말하기 전에 침묵한다. 자애롭고 사랑스런 말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침묵이 종종 사람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더 무겁고 깊게 받아들여진다. 침묵에 발 담그지 못한 말은 소음이 되어 허공에 맴돈다.  
  말해야 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말이 너무 많아 미움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할 때를 알고 있어서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다. 
  지혜로운 이는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지만, 어리석은 이는 때를 놓친다.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말은 독침이 되고, 침묵은 사랑과 겸손을 낳는다.
  말이 홍수처럼 넘쳐 나고 있다. 정제된 금金과 같은 말이 필요한 시대다. 말과 침묵 사이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입을 다물어 버리면 소통이 문제가 된다. 심하면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 
  말과 침묵, 둘 사이의 엇갈림이 참 미묘하다. 말과 침묵의 중도를 찾는 일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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