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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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1.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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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 에세이 ‘길 위에서’ (11)

심장님, 고맙습니다! 
허파님, 고맙습니다! 
위장님, 고맙습니다! 
간장님, 고맙습니다! 
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기 몸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큭큭, 재미난 사람이군!’하고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요즘 나는 깊이 공감한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그들에게 한 번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공기도, 땅도, 먼지 하나조차 나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도 따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살았다. 그렇게 잘난 체하며 사는 동안에도 심장은 뛰고, 허파는 숨을 쉬고, 위장도 최선을 다해 일했으며, 간도 해독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대장은 또 어땠을까? 대장을 배려하지 않고 먹은 음식들 때문에 대장은 또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비로소 전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얼굴은 평화롭다. 윤기가 흐르고, 활기가 넘친다. 그들이 정말로 운이 좋게도 감사할 일들만 넘치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알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감사할 일들을 자꾸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차가 거의 다니지 못할 정도로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칼바람이 귀를 잘라먹을 것같이 춥고, 눈은 푹푹 내리고….그런 날 어쩌다 내가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게 되었다. 바싹 긴장을 하고 거북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한 노인을 태워드린 적이 있다. 물론 그때 그분은 충분히 내게 감사의 표현을 했다. 그것도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했다. 그때의 그 말씀이 이랬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평생 잊지 않겠어요.”나는 흘려들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들을 만큼 선행을 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 추위에 다니는 차라고는 내 차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 태워드릴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착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가벼운 내 생각과는 달리 그분은 그때 자신의 상태가 내가 아니었으면 어찌되었을지 생각할수록 아찔하다고 하신다. 그러고는 몇 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고 음료수며 생선 등을 가지고 찾아오신다. 감사의 표현을 거듭거듭 하면서 몇 년이 지나도록 진짜로 잊지 않고……. 
 여름에 한 거사님이 집에서 따로 가정 법당을 꾸며서 새벽예불을 하신다기에 가지고 있던 법요집 두 권 중 한 권을 나눠드렸다. 물론 잊어버렸다. 오히려 꼭 필요한 하나만 남아서 홀가분해졌으니 감사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일로 그분이 찾아 오셨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며 파운드 케이크를 사 들고서 말이다. 
 “예불을 모실 때마다 잘 쓰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나는 생각한다. 올해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살자고. 
따지고 보면 세상에 모든 일이 감사할 일뿐이고, 나를 분노하게 한 사람이나 기쁘게 한 사람이나 다 보살임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리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제안이다. 나를 힘들게 하고, 모함하고, 분노하게 하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감사를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분들에게는 ‘그만큼만 해주어서 다행입니다!’하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그분들을 일단 다행이다 모드로 놓고 나서  감사해야 할 분들과 감사할 일들에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표현을 하자. 어쩌면 한 해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우리의 얼굴도 평화롭고, 윤기가 잘잘 흐르고, 활기가 넘치는 얼굴로 바뀌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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