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향 수필 - 지렁아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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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향 수필 - 지렁아 놀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1.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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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옥 자<혜향문학회 회원>

누구나 처음은 자연이었다. 생명 아닌 것이 없다. 
요즘 내 안에 생명력을 회복하고 회복된 생명력으로 다른 사람, 다른 생명에 손을 얹어 치유의 기운을 보내주는 ‘힐러’가 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텃밭 잡초를 뽑다가 지렁이가 나오면 기겁해 삼십육계 도망치며 놀란 가슴이 벌렁거리던 아낙은 중년이 되면서 ‘내가 언제?’라고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손바닥에 지렁이를 올려놓고 말을 건넨다. 우리가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지 굵기 만한 지렁이는 유기물을 흡수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키우는 지렁이는 가늘고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보기만 해도 귀엽다. 다른 곤충들은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면 죽은 듯이 있다가 움직이는데 지렁이는 세상일에 초월한 듯 느릿한 동작으로 꿈틀꿈틀 제 갈 길을 간다. 동그란 띠(환대)를 둘러야 어른이 된 것이고 수정하고 알을 낳는다. 자웅동체이지만 수정하려면 두 마리가 서로 환대를 밀착시켜야 이루어진다. 사람이 먹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처치를 자연 순환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고민을 하다가 찾아낸 묘책이다. 
우리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기후변화분과위원회’는 지렁이상자, 화분을 이용해 키우다가 지금은 지렁이 집을 지어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와 유치원을 찾아 지렁이 교실을 운영하는데 이외로 아이들이 너무나 지렁이를 좋아한다. 먹던 밥을 아껴 나눠주는 어린친구에게 지렁이는 과일껍질을 좋아해서 버려지는 것을 줘야 함을 강조해도 맘 여리고 예쁜 아이는 나눠주고 싶어한다. 달달한 과일과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소금끼를 물에 헹궈서 주면 더 감사해 한다. 이빨이 없으니 단단한 것은 잘게 썰어 주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먹성이 좋으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하가 되거나 30도를 오르내리거나 하면 힘들어 한다. 비오는 날 지렁이들이 길가로 떼 지어 나와 있는 것을 보면서 ‘왜?’라고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다. 살던 집에 물이 차올라 숨을 쉬기가 곤란해 피난길 나선 셈이다. 그런데 비 그리고 햇살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한 지렁이들은 길거리에서 말라 죽어 개죽음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들 죽음에도 품위가 필요하다. 우리는 비닐하우스에 차광망을 치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조절을 해주며 버려지는 음식물을 모아 흙속에 묻어준다. 조심스레 흙을 파내면 좁쌀 같은 알과 실만한 새끼와 띠를 두른 어른 지렁이가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본다. 왠지 흐뭇하고 세상에 이익 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고 행복해진다. 
지렁이가 배출한 거름(분변토. 지렁이 똥)으로 호박, 수박, 가지, 물외, 고추, 배추, 상추 등 별별 채소들을 다 심었다. 찾아가는 지렁이 교실에서 텃밭으로 찾아오는 지렁이 교실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이 더 신나한다. 밭 옆에 자란 쑥으로 부침을 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꿩 먹고 알 먹고 덩달아 내가 아이가 된다. 익충, 해충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잣대이지만 지렁이는 익충 중에도 단연 으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지렁이는 천적인 날쌘 제비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지는 것처럼 지렁이에게는 땅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나누는 것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공동체다. 그렇게 우주는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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