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소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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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소치는 사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1.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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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사법연수생 시절에 ≪한국의 불교사상≫이라는 책 속에 실린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읽은 적이 있다. 게으름에 빠져 있던 나에게 목우자牧牛子 지눌知訥스님의 경책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데, 그 경구는 이렇다.
  “슬프다. 대개 삼계를 여의고자 하면서도 티끌세상을 초절하는 수행이 없으니, 몸은 한갓 남자지만 대장부의 뜻은 없다. 위로 도道의 폄을 어기고 아래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사은四恩을 저버렸으니 진실로 수치스러움이 되었다.”
  25세(1182년)에 당시 출세의 관문이기도 한 승과에 합격한 후, 선교禪敎의 극심한 대립으로 파탄에 처한 고려불교를 혁신하기 위하여 스님은 명리를 떠나 팔공산에 은둔하며 정(定, 사마타)과 혜(慧, 위빳사나)를 닦는 이른바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서원을 세운다. 
  목우자의 우리말은 소치는 사람이다. 스님은 1200년 조계산 송광사에 머무시면서 평소 ‘걸음은 소걸음처럼 신중하게, 정신은 호랑이 눈빛처럼 번득이게’라는 뜻을 지닌 우행호시牛行虎視의 몸가짐을 강조하셨다고 한다, 이는 승보총찰 조계총림의 목우가풍으로 전승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소를 타고 소를 찾아 나섰으나 정작 자신이 마음의 소임을 몰랐다. 시절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재가불자들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실린 『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소치는 사람 경」(A11:18)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린 심우도尋牛圖라는 그림을 조금 알 것 같아서다. 
  소치는 사람이 소떼를 돌보고 소떼를 불리려면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추어야 하듯, 부처님의 교법에서 도와 과를 증득하려면 열한 가지 덕목을 충만하게 해야 한다는 게 이 경의 요체이다.   
  소치는 사람이 자기의 소떼가 몇 마리인지 숫자를 헤아리거나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를 알아야 하듯, 수행자는 어떤 종류의 물질이든지 그것이 과거, 미래, 현재의 것이든 지수화풍의 네 가지 근본물질과 거기서 파생된 물질, 즉 28가지 물질의 종류와 물질들의 개별적 특징, 물질들의 생겨남의 네 가지 원인을 지혜로 알고 보아야 한다는 게 이 가르침의 시작이다. 
  재가자로서 수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소치는 사람을 닮으려고 네 가지의 덕목을 실천해 보고 있다.
  첫 번째, 마치 칼로 상자를 열고 그 안을 살펴보듯 호흡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 사대四大 및 몸의 32부분 명상으로 나아가 자신의 몸을 안팎으로 식별한다. 이 몸뚱이의 견고함이 무너짐을 본다.
  두 번째, 소치는 사람이 진드기를 제거하듯 수시로 내 안에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의 조건들을 알고 마음의 문에서 수문장 역할을 증대시킨다.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을 취하거나 그 세세한 부분 상相을 취하지 않아 단지 본 것에서만 그치도록 애쓴다. 
  세 번째, 소치는 사람이 방목지의 적합함을 잘 파악하듯 수행자의 고향동네가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 가지 영역뿐임을 알고 그밖에 다른 교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마치 토끼에서 뿔을, 거북에서 털을 찾지 않듯이. 
  네 번째, 방목지로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듯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를 꿰뚫어 알고 그 길을 따라 길을 걷는다. 
  홀로 머물며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하여 통찰 지혜로써 궁극적 진리를 이해한 위빳사나 행자에게 세속적인 기쁨을 초월한 환희가 일어난다. 
  무더기[五蘊]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통찰 지혜로써 볼 때마다 비할 때 없는 법열法悅의 용솟음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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