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적이 없으므로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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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적이 없으므로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1.3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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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 ②

고옥자 포교사<제주시 포교사단 19기>가 지난해 연말 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를 다녀왔다. 고옥자 포교사는 3일간 이어진 이 법회에서 들은 달라이 라마 법문을 정리해 본지에 보내왔다. 이번 호부터 지상법문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자성(自性)이 공하다’는 것은 그러한 오온은 본래로 자상(自相)이 공한 공성이니 일체 변을 벗어나 실체의 성상이 없는 까닭에 공성이다. 무주처(無主處)의 성품은 불가설(不可說)이니 공성인 것이다. 
‘보아야 한다’는 것은 바르게 여실히 보는 것이며, 그와 달리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아야 한다. 여기까지 입반야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이제는 공성의 정의(性相)를 설한다. “색(色)은 공이다. 공성 또한 색(色)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색(色)이다’라는 것은 공성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므로 착란의 마음(妄念)이 색이라고 보고 분별하거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공하다’고 한 것은 색(色)의 본질이 공성이므로 지난 과거의 때에서 상(相)이 없는 까닭에 불가득(不可得)이며 현재와 미래의 때에도 자상이 없이 불가득(不可得)이니 일체 변과 일체 만물이 머물지 않는 까닭에 공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色)과 공성이 다르지 않으며 공성 또한 색(色)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은 색(色)의 본질은 불가설(不可說)의 공성이며 색(色)을 버리고 공성을 따로 구하여 얻지 못하므로 색(色)이 공성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불가설의 공성인 그것에 대해 색(色)이라고 말로 가립한 것은 본래부터 없으며 얻지 못하는 까닭에 공성 또한 색(色)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수상행식역부여시(受想行識亦復如是)
“그와 마찬가지로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공하다”는 것은 색(色)에 대해 그와 같이 설명한 것과 같이 나머지 사온 역시 그와 같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리자(舍利子),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제법 공성이란 오온에 대하여 설명한 것처럼 다른 것 역시 육처(六處)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출세간의 제법 또한 공성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성상(性相)이 없다(無性相)’고 한 것은 허공에 성상이 없듯이 공성에는 번뇌의 성상 또한 없으며 청정함의 성상 또한 없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현재의 발생은 이전에 없던 것이 이후에 있게 된 것이다. ‘멸(滅)’은 이전에 있던 것이 이후에 없어지는 것이다. 공성은 불가득(不可得)이니 없으므로 이전에 생기지 않는 것(不生)이다. 생긴 적이 없으므로 이후에 멸하지 않는 것이다. 
‘불구(不垢)’와 ‘부정(不淨)’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더러움(垢)’이란 식(識)들이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를 진실이라 분별하여 행하는 것이다. 공성은 식(識)을 뛰어넘기 때문에 불구(不垢)이다. 부정(不淨)이란 공성에 더러움이 없기 때문에 더러움을 벗어남(淨)도 없는 것(不淨)이다. 
“줄어듦이 없고 늘어남이 없다(不增不減)”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줄어듦(減)’이라는 것은 중생이다. ‘늘어남(增)’이라는 것은 부처이다. ‘없다’고 한 것은 중생과 부처는 구하여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증감이 없는 것이다. 

시고공중무색(是故空中無色),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그런 까닭에 공성이란 색이 아니다.”라는 것에 있어 색(色)이란 무너지는(壞) 성상(性相)인데 공성에 성상에 없는 까닭에 공은 색이 아니다. 
“수(受)가 아니다(非受).”라고 한 것은 마찬가지로 수(受)는 느끼는 성상인데 공성에 저 성상이 없는 까닭에 수가 아니다. 
“상(想)이 아니다(非想).”이라고 한 것은 상(想)이란 분별하는 성상인데 공성에 저 성상이 없는 까닭에 상이 아니다. 
“행(行)이 아니다(非行).”이라고 한 것은 행은 현행(現行)의 성상인데 공성에 저 성상이 없는 까닭에 행이 아니다. 
“식(識)이 아니다(非識).” 식(識)이란 각각 개별 대상을 분별하는 성상인데 공성은 저 성상이 없으므로 식들이 아닌 것이다. 
“들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오온들은 유루(有漏)의 성상인데 공성은 저 성상이 없는 까닭에 오온들이 아니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非身意)
“눈(眼)이 아니다(非眼).” 눈은 보는 성상인데 공성에 이 성상이 없으므로 공성은 눈이 아니다. 
귀(耳)가 아니다(非耳). 그와 마찬가지로 귀는 듣는 성상이다. 
코(鼻)가 아니다(非鼻). 코는 냄새 맡는 성상, 혀(舌)가 아니다(非非). 혀는 맛을 보는 성상, 몸(身)이 아니다(非非). 몸은 촉감을 느끼는 성상, 생각(意)이 아니다(非意). 생각은 개별적 대상을 분별하는 성상이며 공성은 그와 같은 성상이 없으므로 생각이 아니다. 그와 같이 육근은 육경을 장악하는 성상이며 공성은 그와 같은 성상이 없으므로 육근들이 아닌 것이다. 
“색(色)이 아니다(非色)”색은 색깔과 모양의 성상이며 공성은 이 성상이 없으므로 색이 아닌 것이다. 
“소리(聲)가 아니다(非聲)” 그와 마찬가지로 소리는 듣기 좋거나 나쁜 성상. “냄새(香)가 아니다(非香)”냄새는 맡는 것의 성상, “맛(味)이 아니다(非味)” 맛은 맛보는 것의 성상, “촉(觸)이 아니다(非觸)” 촉은 거칠고 부드러운 촉감의 성상, “법(法)이 아니다(非法).” 법은 개별적 유형의 성상이며 공성은 그와 같은 성상이 없으므로 법이 아니다. 

무안계내지무의식계(無眼界乃支無意識界)
그러므로 경(境)들은 대상을 삼는 조건의 성상인데 공성은 상이 없으므로 경(境)이 아닌 것이다. 
“안계(眼界)가 아닌 것이며 의계(意界)가 아니며 의식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또한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18계(十八界)는 존재의 성상이며 공성은 이 성상이 없으므로 18계가 아니다. 

무무명(無無明) 무무명진(無無明盡)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
“무명(無明)이 아닌 것에서 노사(老死)가 아니며 무명이 다함(無明盡)에서 노사의 다함(老死盡)까지가 아닌 것이다.” 무명에서 노사까지 12연기는 윤회를 유지(維持)하는 성상인데 공성은 그와 같은 성상이 아니므로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기까지 아닌 것이다. 무명진에서 노사진까지는 청정한 성상인데 공성은 그와 같은 성상이 없으므로 무명진에서 노사진까지가 아닌 것이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고(苦)와 집(集)과 멸(滅)과 도(道) 또한 없는 것이다.” 고는 괴롭게 하는 성상, 집은 오온을 취하게 하는 성상, 멸은 사라짐의 성상, 도는 앎(知)의 성상인데 공성에 그와 같은 성상이 없는 까닭에 공성은 사제(四諦)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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