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는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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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는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2.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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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 ③

고옥자 포교사<제주시 포교사단 19기>가 지난해 연말 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를 다녀왔다. 고 포교사는 3일간 이어진 이 법회에서 들은 달라이 라마 법문을 정리에 본지에 보내와  지상법문을 통해 게재하게 됐다.<편집자주>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지혜가 아니다(非智).” 지혜는 제법을 실제로 아는 성상이며 공성에 그와 같은 성상이 없으므로 지혜가 아닌 것이다. 
“얻음이 아니며 얻지 못함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얻음이란 위없는 깨달음(무상정득각)이다. 얻지 못함이란 중생이 무상정득각을 얻지 못함이다. ‘아니다’는 공성의 성상에 무상정등각을 얻지 못함이다. ‘아니다’는 공성의 성상에 무상정등각이 또한 없으며 중생도 없기 때문에 얻음 또한 없는 것이요 얻지 않음 또한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제법은 자성이 공한 성품이며 공성이란 “이와 같은 것이니라.”라고 설하신 까닭이다. 여기까지 공성의 성상이다. 

보리살타(菩提薩陀),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密多故)
이제 반야바라밀다 행경(行境)의 의미를 설명한다. “사리자여, 그와 같이 보살은 얻은 바 없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고 행하느니라.”라고 한 것은 공을 깨치지 않은 자에게 깨쳤다는 생각 때문에 반야바라밀다의 이 행경을 가졌다면 공성을 행하고 있는 증거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라고 한 것은 제법이 공성인 까닭이다. 
“보살들께서 얻은 바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는 것은 대승에 머무는 보살들께서 오온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얻음이 없음을 알고 어떤 법 또한 티끌조차 본 바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다. 제법은 공하여 머물지 않은 자성이나 그와 같이 알지 못하는 무명의 착각으로 어둡기 때문에 윤회의 바다를 떠돌며 윤회하는 것이다. ‘착각하는 그 마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세 가지 지혜로써 살펴본다면 마음은 대상으로 삼을 바가 없으므로 번뇌를 또한 보지 못하며 청정함 또한 보지 못한다. 오온에서부터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또한 보지 못한다. 공성과 무상(無相)과 불생(不生)과 불멸(不滅) 등을 또한 보지 못한다. 지혜 또한 바르게 따라 보지 못하며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 그것이 마음의 성품을 본 것이다. 그와 같이 마음의 성품을 본 그것이 보리(菩提)를 본 것이다. 
누군가 보리를 본 그것이 법성으로 부처를 본 것이다. 법성으로써 부처를 본 그 자는 무상정등각을 증득한 부처이다. 
이러한 것을 의심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그와 같이 아무것도 없음을 오직 설명하는 것이 외도들의 단견(斷見)과 성문의 적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답을 하자면 그와 같지 않다. 불가득의 이치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며 무상정등각에 회향한다. 육바라밀 등을 불가득의 이치로써 행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허물이 없는 것이다. 

심무가애(心無罣碍), 무가애고(無罣碍故), 무유공포(無有空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
이제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을 설명한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므로 장애가 없으며 전도몽상에서 뛰어넘는 구경에 열반하느니라.” 라는 부분에서 반야바라밀 공성의 뜻을 듣고(聞) 사유(思)하고 닦음(修)에 이르기까지 두려움 없이 심(心), 의(意), 식(識), 일체의 종자를 사라지게 하므로 마음의 장애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자 외도와 성문과 연각의 행을 뛰어넘어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다 소멸하여 대열반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까지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이다. 

소유삼세제발(所有三世諸佛),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密多故),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제 반야바라밀의 과(果)의 의미를 설명한다. “삼세에 출현하시는 제불 또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 부처를 이루었느니라.”라고 한 것은 시방세계에 출현하시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깊고 깊은 이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읽고 암송하고 독경하고 닦아 타인에게 설하며 반야바라밀다를 행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성불한 것이다. 
‘삼세제불 또한’이라 한 것은 반야바라밀다가 미래의 부처를 낳을 것이며 과거의 부처도 반야바라밀다에서 생겼으니 반야바라밀은 일체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고지반야바라밀다(故知般若波羅密多), 시대신주(是大神呪), 시대명주(是大明呪),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 진실불허(眞實不虛), 고설반야바라밀다(故說般若波羅密多呪)
이제 반야바라밀다주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런 고로 반야바라밀의 진언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에 ‘그런 고로’라고 한 것은 앞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런 고로’라고 한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고 한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뜻을 밝히는 행은 진언이라고 하고 세간의 제법조차 무상정등각의 대승이 되며 자타 모두 무상정등각으로 부처가 되기 때문에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한 것이다. 
‘대명주(大明呪)’라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뜻을 밝히는 주문이며 탐진치와 윤회의 일체 고통은 불가설(不可說)의 무자성(無自性)임을 설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다는 대명주이다. 
‘무상주(無上呪)’라는 것은 반야바라밀은 위없는 깨달음(무상정등각)을 이루게 하는 것이므로 무상주이다. 
‘무등등주(無等等呪)’는 반야바라밀은 세간과 성문과 연각의 행에 비할 데 없으며(無等) 제불의 지혜와 동등(等)한 까닭에 무등등주(無等等呪)의 진언이다. 
“일체 고통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주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라는 부분은 반야바라밀을 읽고 외우고 여법이 작의하고 다른 이에게 설하는 것으로 눈병 따위의 일체 병이 없어지며 시방제불과 천룡 등이 보호하고 반야바라밀 행으로 악도와 윤회의 모든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므로 일체고통을 없애는 주문이다. 반야바라밀의 주문을 말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苦提娑婆訶)
“따야타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쌈가떼 보디 쏘하”라고 한다. 반야바라밀의 이 주문으로 최상의 일체심심미묘의 핵심이 본연으로 수렴되어 있으므로 가피가 깃든 주문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진 질문들>
AI라든가 현재 과학이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가하는 첫 법회 질문에 대한 달라이 라마 답변
▲ 인간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재해,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산불이나 전쟁, 기아, 아프리카 분쟁들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불행한 사건들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불행이다. 또한 종교적인 분쟁 역시 자기 혼자만 잘되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사랑과 자비심의 결여로 인한 것들이다. 
육개월 된 아기들에게 서로 도와서 하는 축구하는 영화를 보여 주었을 때 아기들은 방긋이 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로 경쟁하면서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었을 때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은 종교적 차원에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화가 극도로 났을 때 몸의 면역 기능이 저하된다는 의학자들의 의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화합시키는 것이 사랑이고, 분노를 많이 표출하는 사람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지만,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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