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섬부주(南贍浮洲) - 트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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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섬부주(南贍浮洲) - 트멍
  • 보문 이도현 객원기자
  • 승인 2019.02.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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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 ‘트멍’

사이, 간격, 틈새의 의미
짧은 시간, 좁은 공간
이중의 의미 지녀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
동시에 담아…

 

 

보문 이도현 <본지 객원기자>

제주어인 ‘트멍’은 언어학적으로 보면 참 보기 드믄 특이한 영역에 속하는 말이다. 제주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트멍’의 뜻은 사이, 간격, 틈새 등의 의미로 쓰임을 알 수 있는데 짧은 시간, 좁은 공간 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즉, ‘트멍’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단어에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는 것이다. 시골 어르신들이 쓰는 예를 들자면 “그 아이는 어느 트멍에 가시냐?”는 순간이라는 시간적 의미로 쓰이고, “그 물건은 어느 트멍에 곱쪄시냐?”는 장소라는 공간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 우주(宇宙)라는 말에도 시공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宇)는 동서남북과 위 아래로 펼쳐진 공간을 뜻하고, 옛적부터 지금까지를 주(宙)라 한다. 宇에는 끝나는 곳이 없고 宙에는 시작이 없기에 옛부터 지금까지 길이를 알 수 없다. 천문학에서는 이 우주가 생기면서 시․공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37억 년 전 어느 한 점에서 폭발한 사건, 즉 big bang (빅뱅)이라는 대폭발에 의해 우리가 속한 은하계가 탄생하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은하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속팽창을 하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 가서는 다시 가속축소 되면서 한 점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이 지구도 45억 년 전에 생겨났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이다. 대폭발이 시작된 어느 “점” 이라는 것도 크기와 무게는 없고 오직 위치만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부처님께서도 우주의 탄생과정에 대해 ‘디기니까야경’에서 설하신 바가 있는데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했다. 나는 미래도 아니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현대 천문학자들의 관찰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서 부처님의 교설이 삼천대천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세간(世間)이라고 하는데, 세(世)에는 ‘역사, 시간, 때’ 라는 시간성 의미가 포함되고, 간(間)에는 ‘사이, 틈’ 이라는 공간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모든 시간과 공간에 펼쳐진 세간이라는 뜻으로 시방삼세(十方三世)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불교적인 의미를 담아 표현한 구절이 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味塵中含十方)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즉 하나의 티끌 가운데도 우주를 머금고 있으며 찰라의 한 생각이 곧 끝도 없는 무량겁이라는 말이다. 일미 또는 극미는 불교에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한 물질의 최소단위이고, 찰라는 시간의 최소단위이다. 빅뱅이라는 대폭발과 함께 시작된 시간과 공간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 관계이다. 
공간을 벗어난 시간 없고 시간은 공간의 존재를 인식시킨다는 점에서 시․공간은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으며, 이는 곧 부처님의 핵심교설인 연기법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발견하신 부처님의 깨달음은 삼천대천세계가 존재하는 한 불변의 진리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또한 시간과 공간은 절대로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주어 ‘트멍’은 이 뜻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며, 어찌 보면 조그만 섬에 갇혀 살면서 우주를 품고 삼세를 관통하고자 했던 제주 옛 어른들의 뜻과 바람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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