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묻어나는 에세이 - 매화가 피는 해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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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묻어나는 에세이 - 매화가 피는 해안동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2.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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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범<혜향문학회 회원.본지객원기자>

봄이다. 매화가 피는 계절, 저마다 앞 다투어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지만 역시 봄에 피는 으뜸은 매화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중국 양쯔 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김홍도는 매화를 즐겨 그렸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다. 마침 김홍도에게 그림을 사겠다고 청하고 그림 값으로 3,000냥을 주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200냥으로 안주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그래서 이를 ‘김홍도(金弘道)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우리 마을 도처에 매화나무가 있었다. 특히 ‘진산전’(현재 잃어버린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 근처) 앞에는 매화나무가 다수 있어 꽃이 피면 참 보기가 좋았다. 암벽이 수려한 ‘무수천’ 계곡에도 매화나무가 이른 봄에 피었다. ‘노리물’ 위쪽 구릉 가운데엔 제법 큰 매화나무가 있어서 초가지붕을 수놓을 만큼 만개하면 꿈길을 걷는 기분으로 지나다녔다. 우리 집 올레에도 아버지가 오래 전에 심어놓은 매화나무가 봄마다 꽃을 피웠는데 그림에서나 보았음직한 멋진 풍경이 되곤 했다. 
 아스라한 기억들을 더듬으면 고생했던 시절도 추억으로 다가온다. 아버지를 따라 소를 보러 목장을 오가던 어린 시절, 목이 타면 땅에 엎드리고는 흐르는 계곡물에 수건을 덮어서 빨아먹으면 허기가 달래지곤 했다. 그런 물을 처음에 마실 때는 소똥이 빠져있고 개구리와 고치깔배기(배가 붉은 색을 띄는 무당개구리)가 뛰어다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저할수록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었다. 그 때는 아버지가 엄청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노쇠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역지사지로 살펴보곤 한다. 그 심정 어땠을까? 아버지를 뵐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어제도 서둘러서 아내와 함께 해안동 아버지 집을 찾았다. 아버지와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마을인 해안동의 유래를 알았다. 해안동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은 ‘주루레’(아버지는 주르레뚜 라고 발음하셨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해안동 1번지는 주루레에 있다. 용천수가 나오는 곳을 중심으로 모여들다 보니 처음에는 몇 안 되는 집이 생겨나고, 양식이 없어서 근처 오름에 가서 오소리나 노루를 잡아먹기도 했고, 산나물도 캐어다가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 다음 마을이 생긴 곳이 ‘남짓당’(현재 김씨 형제가 녹차밭으로 개간한 곳)이고, ‘선낭당’(진산전 근처)으로 집들이 생기면서 ‘탱자낭밭’(현재 중국성 개발지), ‘붉은밭’(계구리가든 서쪽 일대, 서쪽에 절간이 있음)‘, 사상밭’(개발지역), 을 거쳐서 지금의 ‘서당’(독숭물)이 있는 곳까지 삶의 터전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사당터’(큰 기와집을 지어서 글을 가리키던 곳, 지금도 깊이 쟁기질을 하면 기왓장이 나온다고 함)는 해안동의 명실상부한 학문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터다. 옛날 도에서 말을 길러 진상을 하는 목장이 열 곳이 있었고 그 외에도 각 마을별로 목장이 생겨났었는데 해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샛또’는 해안 마을에서 말을 길러 공출을 하던 목장이 있던 곳으로 현재 이생이 표지판이 있는 남쪽이다. 목장 울타리를 따라 소롯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좁은 길이지만 옛날에는 대정까지 가는 주도로였다. ‘권자리왓’을 잇는 길은 옛날 ‘사령’이 마을마다 왕의 명령을 전하고 공출을 담당하느라고 갓을 쓰고 말을 타고 다니던 길로 예전에는 이 길이 대한질 이었다고 한다. 길을 따라 동쪽 방면으로 가면 딸기 마을로 유명한 아라동 길과 마주친다. 
조상들이 살 곳을 찾아 옮겨온 길을 보면 용천수가 곳곳에 있고 그 길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어쩌면 해안동 샘터들은 매화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나도 하얀 백발을 하고 앞마당에 핀 매화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색(1328년 ~ 1398년)이 나라가 망하는 안타까움을 매화에 비유한 시조가 떠오른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꽃샘추위도 사라지고 완연한 봄이 되니 매화 향기에 취하고 싶어 동리 옛길을 산책과 사색으로 더듬어 마음의 행로를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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