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세음보살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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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세음보살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2.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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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 ⑤

고옥자 포교사<제주시 포교사단 19기>가 지난해 연말 달라이 라마 방일 법회를 다녀왔다. 고 포교사는 3일간 이어진 이 법회에서 들은 달라이 라마 법문을 정리, 본지에 보내왔다. 그리고 지상법문을 통해 이를 게재하게 됐다. <편집자주>

 

2일차 법문

5대 달라이라마 때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다. 수행 중 청정한 관정을 받았다. 밀교의 25가지 법통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5대 달라이 라마 때부터 밀교의 관정을 전통적으로 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어릴 때 관정을 받았다. 대자대비 성관음관정을 13대 달라이 라마 때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관정에 대해서 설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5대 달라이라마가 수행을 시작했을 때 라사에 보디상보불상의 가슴에서 특별한 현상을 보시고 특별한 성관세음보살의 관정을 시작하셨다. 
그 중 보디상보 성관세음보살의 관정을 하겠다. 다람살라에서 보디상보의 불상을 모셨다. 다람살라에서 스님들이 불상의 모습이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많이 보셨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근엄한 모습이 웃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많이 봤다. 꿈에서 ‘당신은 공성을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정말 깨달으셨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이러한 관세음보살을 등에 업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장 스님께서 나란다 법통을 시작하셨다. 그 당시 돈수보살의 제자인 나가보디시절이었다. 7‧8세에 티베트의 석학에 의해서 나란다의 법통을 이어나갔다. 열두 분의 대화상 불화를 그리는 대회가 있다. 나란다에서 열두 분의 대화상의 논서를 연구 공부한다. 거기에 다섯 분을 더하여 열일곱 분의 불화를 그리는 고전들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열일곱 분의 논서를 공부하는데 역사적 증명보다 낫다. 용수보살의 논서를 두 분 부처님의 어떤 점을 논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란다의 열일곱 분의 붓다를 보이는 곳에 걸어놓는 게 좋다. 
열일곱 분의 학문이 중요한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처님말씀을 대과학자들이 검증하고 증명해 내기 때문에 불교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나란다의 법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대승의 국가들이 있을 수 있다. 
쫀까나 대상의 법문을 듣고 전 달라이 라마 분들이 짱지방에서 수행하실 때 관자재보살을 관성하신 일들이 일어났다. 2대 달라이라마께서도 관자재보살님을 뵙고 대품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내가 어릴 때 대풍사원에서 대풍사원을 보호하는 호법신장과 본존을 위한 특별한 염불은 2대 달라이라마께서 만드셨다고 들었다. 
5대 달라이라마께서는 포탈라궁을 지으셨다. 파드마 삼바바도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이어왔다. 훈훈이라는 작은 지방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달라이 라마가 된 것은 특별한 호법신장과 보살들의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심을 통해서 마음에 평화를 얻고 인생이 편하고 세세생생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불교의 수행이다. 마음 다스리기를 못하면 불교 수행이 의미가 없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조건이 무엇이 있는지, 고통을 가져다 주는 조건은 무엇이 있는지를 잘 살펴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고통은 무명에서 생긴다. 번뇌에는 모든 무명이 있다. 정견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정견이 이겨낼 수 있다. 
무명이 탐진치를 불러일으킨다. 이기심을 다스리는 방편은 이타심인데, 이 모든 것이 나란다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재가자들은 우바새, 우바이 계를 받으면 좋다. 반드시 사부대중에게 관정을 주게되어 있기 때문에 사부대중에 속해야 한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대망어 불음주 오계를 지키는 것이 우바이 우바새다.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다. 법성을 통해서 우리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시면서, 진제와 속제의 법을 설하시면서 중생을 제도하신다. 진제의 공부를 시키시고, 속제의 방편을 보이시면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최초에 행하신 법문도 다섯 비구를 상대로 하여 사성제를 설하신 것이다. 중전법률 반야경을 통해 겉으로는 공성, 내적으로는 현 관자재에 관한 가르침을 행하신 것이다. 용수보살은 공성을 설하시고, 무착보살은 간접적인 가르침인 현 관자재를 논하셨다. 부처님께서 고성제와 집성제만 제시하셨다면 근심과 고통만 안겨주는 것이지만, 그 해결 방안인 멸제와 도제를 제시해서 해결방안을 주셨다. 
‘보리도 강론’은 선지식을 의지하여 제자가 어떻게 수행을 할 건지를 제시한다. 
쫑카파대사는 “자기 마음을 조복받지 못한 자가 다른이를 어떻게 조복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신다. 쫑카파 대사의 저서는 ‘보리차제론’으로 매우 훌륭하다. 선지식에 대한 자격을 제대로 알고나서 의지하면 수행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삼보’라 함은 불보인 법을 설하신 주체이고, 법보는 경전이 아니라 경전 속의 내용을 말한다. 또 하나는 우리들의 조력자인 승보이다. 우리 마음에 ‘무명’아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없앨 수 있다. ‘여래장’이라는 것이 마음 속에 처음부터 있었으므로 무명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신구의 허물을 제거하고 보살행을 마음 속에 다짐하는 것이 법보이고, 보리심은 이타심이다. 모든 종교를 떠나 ‘자리이타’를 행하는 것이 진정한 보리심인 것이다. 

<금강승 보살계>
중생들을 해탈케 하려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보에 최상의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제가 항상 귀의하나이다.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정진하며 중생을 위하여 제가 부처님 전에 머물며 원만한 보리심을 일으키겠나이다
삼보께 제가 귀의하나이다. 모든 악업을 참회하나이다. 중생의 선업에 수희 찬탄하나이다. 부처님의 정각을 마음에 두고서 부처님과 법과 성중께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귀의하나이다. 자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겠나이다. 
최상의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중생을 나의 귀빈으로 여겨 누구나 좋아하는 최고의 보살행을 하겠나이다.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부처를 이루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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