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건물주
상태바
어쩌다 건물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3.06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정진의 ‘길 위에서’ (14)

어쩌다 보니 건물주가 되었다. 혹시라도 조물주가 부러워할 빌딩을 상상하신다면 그건 아니다. 그저 시골길에 점포 두 개를 가진 작은 건물이다. 요즈음은 경기침체로 모든 임대 자체가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배짱 좋게 엄청나게 까다로운 임대 조건을 내세운 건물주이다. 내가 점포를 빌려주는 조건은 이렇다.

첫째 젊은 청년들이어야 한다.
둘째 구태의연한 아이템이 아닌 새로운 아이템이어야 한다. 
셋째 고기나 생선 등 지지고 볶고 하는 음식점은 절대 안 된다.(채식음식점은 가능하다)
넷째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

누구든 점포를 빌리겠다고 하면 ‘어서 오십시오!’ 하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맞이해야 할 판인데 별스럽게 까다로운 조건에다 제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촌에 누가 들어오겠는가? 하지만 점포 두 개는 이 건물주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고 주인을 맞았다. 조건은 비록 까다롭지만 저렴한 임대비와 일 년간 임대비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안정을 위해 3년간은 임대비를 올리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다 꿈도 꾸지 않았던 건물주가 되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왜 나는 건물주가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건물주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이왕에 건물주가 되었으니 건물주로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이 건물주의 원력은 이제 젊은 부자를 키워내는 것이다. 천박한 부자가 아닌 훌륭한 부자를 키워낸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될 것이므로. 그들의 아름다운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날마다 그들이 사업이 원만하게 성장해나가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건물주가 된 까닭일 테니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부디 푸른 청년들이 부자가 되어서 돈에서 자유롭고 그 자유를 수행과 보살행을 하는데 사용한다면 극락은 보다 가까우리라.
 이 시점에서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렇게 하느냐? 다른 사람이 부자 되는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 그게 과연 진심이냐?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가? 그들이 정말로 나랑 상관없는 사람인 게 확실한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데 왜 진심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앞으로도 이 건물주의 임대 조건은 더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천박한 부자가 아닌 반드시 훌륭한 부자를 키워내야 함으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