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봉정사(鳳停寺)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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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봉정사(鳳停寺)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3.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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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80)
봉정사 가람배치

안동 봉정사는 아담하고 고즈넉한 절 분위기로 그 이름이 일찍부터 널리 알려졌다. 봉정사가 지닌 오랜 역사만큼 오늘날 봉정사에는 아껴서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보물이 많이 전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 먼저 국보로 지정된 것으로 극락전(국보 제15호), 대웅전(국보 제311호)이 있고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는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과 같은 절집과 대웅전 후벽에 그려진 영산회상도 벽화(보물 제1614호), 야외 행사 때 괘불대에 거는 7.31m 높이의 영산괘불회(보물 제1642호), 1713년에 그려진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의 불화가 전하고 있다. 이외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금박을 입힌 목조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도 있다. 사찰의 규모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른 사찰들에 비해 작다 보니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불상이나 불화의 수가 적다. 하지만 우리나라 목조건축사에서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이 지닌 위상과 그 아름다움은 그 부족함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현재 봉정사의 중심 불전은 절집 입구라 할 수 있는 만세루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있는 대웅전이다. 가지런하게 쌓아올린 돌계단을 밟고 오른 뒤 고개를 숙이고 누마루 아래를 지난 후 고개를 들면 탁 트인 열린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대웅전 앞마당이다. 나지막한 기단 위에 숲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웅전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보다는 가만히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과 그 좌우에 자리한 요사채 무량해회와 스님들이 공부하는 공간인 화엄강당이 만드는 사각형의 공간에는 다른 사찰의 대웅전 앞마당에서 흔히 보는 석탑이나 석등 등 석물이 하나도 볼 수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허전한 듯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걸림이 없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아마 그 느낌은 순례자의 마음과 일치할 것이다. 무엇인가 볼거리를 기대했던 이는 아쉬움이, 대웅전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는 이는 오롯이 대웅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편안한 느낌이 든다. 대웅전의 오른쪽, 즉 서쪽에는 극락전이 자리하고 있다. 극락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수미산 서쪽에 자리한 정토이니 대웅전의 서쪽에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봉정사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두 절집이 동시에 지어졌는지 어느 하나를 먼저 짓고 다른 하나는 후대에 지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은 대웅전 앞에 놓이는 것이 맞는데 봉정사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그마한 탑이 극락전 앞에 놓여 있다. 극락전이 있는 공간도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극락전 좌우에 위치한 화엄강당과 고금당이 마주보며 감싸 안은 구조이다. 극락전이 대웅전에 비해 규모가 작고 마당 중앙에 작은 탑이 서있어서 마당 안에 서 있으면 편안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산사의 아름다움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같은 사찰에 있는 절집이라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느낌이 각기 다르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대웅전 앞마당의 거침없는 시원스러움과 극락전 앞마당의 편안함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우리나라 절집의 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대웅전 불단 뒷벽에 그려진 영산회상 벽화 (조선 초기 추정)


 절집의 용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작은 탑은 옮길 수도 있어서 봉정사 건립 당시의 가람 배치가 지금과 같은지 궁금하지만 봉정사와 관련된 기록들이 여러 차례 전란을 거치면서 사라져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아쉽다.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처럼 사찰의 중심 불전으로 두 전각이 나란히 배치되면서 독자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절집으로는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불국사를 들 수 있다. 불국사의 경우도 두 불전 중 대웅전이 더 크고 중심 전각인데, 불국사 대웅전은 〈법화경〉을, 극락전은 〈무량수경〉, 〈아미타경〉 등 정토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봉정사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창건설화처럼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려볼 수 있다면 두 사찰을 비교하여 두 전각의 쓰임을 유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봉정사 대웅전의 건물 내, 외부에는 다양한 많은 벽화들이 그려져 불전을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현재 대웅전 내외부에 그려진 벽화들은 대부분 1999년에서 2000년 사이 수리 복원하는 과정에 원래 그림을 모사하여 복원한 그림이다. 원래의 벽화들은 벽체에서 떼어내어 유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불상이 모셔진 뒷벽에 그려진 벽화를 비롯하여 총 53점이다. 보물 제1614호로 지정된 영산회상 벽화는 1997년 1월 16일 삼존불 뒤에 걸려있는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를 수리하기 위해 내렸을 때 발견되었다. 벽화 표면이 오랜 시간에 따른 마모와 인위적으로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점도 있어서 현재의 상태는 원래의 아름다움을 찾아 볼 수 없다.

영산회상 벽화 모사도

하지만 전체의 구도와 남아있는 색채를 통해 원래 벽화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웅전 해체수리 시에 발견된 1435년에 쓰인 〈대웅전중창기〉 등을 통해 중창할 시기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면의 하단에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그림을 그리는 데 기여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화기란에는 영산회라는 그림의 이름과 36명의 승려 및 일반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벽화가 그려진 시기나 그린 화가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중앙에 결가부좌를 한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협시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수많은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다. 그림의 이름이 영산회라는 것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이 벽화는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영산회상도이며, 이러한 구성의 불화로 보기 드믄 이른 시기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오래된 절에 가면 절집들이 갖고 있는 각기 다른 분위기와 절집 곳곳에 그려진 그림과 석물들을 눈여겨보자. 그 속에서 우리나라 사찰의 공간 배치와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 및 석조물들의 쓰임새와 건물을 장엄하기 위해 그려진 많은 그림들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 또한 사찰 순례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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