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의 마음을 젖게 하는 한 편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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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의 마음을 젖게 하는 한 편의 詩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3.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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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조시인 오영호

아득한 성자

조 오 현 (1932~2018)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무산 조오현은 승려이며 시조시인이다. 위 시는 정지용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좋은 말을 하려면 입이 없어야 하고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없어야 한다”는 말로 제1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던 오현 스님. 설악산을 평생 지키시다 지난 해 87세로 입적하셨다. 많은 문학인들의 대부 역할을 많이 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2년 전 ‘아득한 성자’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시조의 격조와 선시의 심오함이 잘 어우러졌다”는 감상평을 덧붙이기도 했던 작품이다.
 하루살이가 하루 동안에 해가 뜨고 지는 자연 운행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면서 그 이상 볼 것이 없다며 기꺼이 죽음을 택한다. 어쩌면 하루살이는 하루에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자라고 사랑하고 알을 낳는 성자처럼 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인 백 년이나, 우주가 운행하는 수 억 년이나, 하루살이의 하루의 시간이 똑같이 대등한 가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의상 대사의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처럼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읽어내는 구도적인 명상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깨달은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백담사를 다시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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