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아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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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아침이 좋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3.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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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탓인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됐다. 아직은 동트기 전이라 창밖은 어스레하다. 이때쯤 나의 토굴인 출리산방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오롯이 가부좌하고 들숨·날숨의 호흡에 집중한다.  
뜬 구름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생각들로 들떠있던 마음이 코끝으로 모아진다. 흔들림 없는 깨끗한 믿음을 지내기 위해 부처님과 법과 청정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성냄과 해코지를 지워 없애기 위해 자비명상으로 나아간다.
날이 밝으려는지 창밖이 희붐하다. 창 밖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청각에 부딪친다.
아침 첫 손님이다. 새들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런 자연의 소리에는 고유한 리듬인 ‘1/f파’가 있어 뇌의 알파(δ)파 활성화를 촉진시켜 마음을 쾌적하게 만들며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키는 이완효과가 있다.
어떤 이들은 TV방송으로 세계 곳곳의 새로운 뉴스를 만나보는 시간이라서 아침이 좋다고 말한다.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에 익숙해져 그런지 고상한 생각 없이 아침을 맞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출근길에 쫓기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시간은 나에겐 황금을 몰고 온다. 동틀 녘 빛의 에너지가 방안으로 스며들면 이 몸뚱이가 부정하다고 인식하는[不淨想] 수행으로 나아간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구제하기 위함이다.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 이 몸뚱이는 32가지 부정한 물질로 가득 차 있는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와 같다고 비유한 금언이 있다. 이 몸은 뼈와 힘줄로 엮어있고 내피와 살로 덧붙여지고 피부로 덮여져 있을 때 형색(rūpa)이라는 명칭을 얻는다. 
지혜의 칼로 해체하면 몸 안에는 땅의 요소인 오장육부와 물의 요소인 땀과 피, 담즙 등이 있고, 아홉 구멍에서는 눈곱, 귀지, 콧물, 침과 가래, 오줌과 똥 등등의 더러운 것들이 나온다. 죽여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는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몸을 하루만 씻지 않아도 냄새가 나고 쉽게 병에 걸린다. 이 몸뚱이가 본질적으로 불결하고 불안정함에도 청소년들까지 이른바 ‘얼짱’, ‘몸짱’이라는 상술에 속아서 외모 가꾸기에 아등바등한다. 젊은 여인이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다는 것도 깨끗하지 않고 불안정한 몸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에는 ‘이 몸이 자아다’라는 사견邪見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처님의 교법에서는 이를 유신견이라 한다. 세존께서는 “욕망이 있음으로 더러운 몸이 아름답게 보이니, 이것이 욕망이고 아름다운 것이 저것이다.”라는 사자후를 토하셨다. 
부처님은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오염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다.’라고 가르치신다. 음식을 담는 그릇도 물질이고, 밥과 반찬도 물질이고, 이를 먹는 사람도 물질이기 때문에 이 몸뚱이는 변할 수밖에 없고, 물질을 대상으로 하여 육근六根에서 일어나는 의식조차도 조건 지어진 것이라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몸을 더럽다고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몸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성품을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알아차려 감각적 쾌락의 노예에서 해방되고자 함이다.
우리가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리면 조그만 상처의 고통도 두려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중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은 온통 아픈 곳에만 마음이 가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와 같이 몸의 상처와 병을 돌보고 치료하듯,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붙잡아 매고 제대로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염신경(M119』에서 세존께서 몸에 대한 부정관(不淨觀) 명상을 반복해서 실천하고 닦고 거듭거듭 행하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확립하고 강화하고 노력할 때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고 설하셨다.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 존자도 깨끗하지 못한 인간의 몸을 해체해서 살피는 부정관이나 백골관白骨觀 수행을 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 역시 교법에 따라 아침 동틀 무렵 어김없이 몸에 대한 부정관 명상을 거듭거듭 반복한다.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4대 요소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짐을 알고 본다. 
  몸의 무상함에 대한 앎과 봄이 있는 아침이라서 참 좋다. 이 느낌이 출근 후 퇴근까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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