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살의 서울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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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살의 서울 나들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3.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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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15)

정말 부럽다, 부러워! 
그 보살이 서울 나들이를 가던 날 나는 부러워 죽을 뻔 했다. 그깟 서울 나들이에 부러워 죽을 뻔 했다는 말이 웬 말이냐? 어이가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웬만한 고속버스비보다 저렴한 저가 항공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는 시대에 살면서 말이다. 설사 내가 서울 구경 한번 하는 게 소원인데 비행기 값이 없어 못 간다고 하더라도 그 소원쯤은 들어줄 사람도 있을 것이니. 이만하면 눈치 채셨겠지만 내가 부러운 건 서울이 아니다. 그 보살의 복이다. 
 보살은 10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셨다. 보살은 시어머니를 마치 아기 보살피듯 했다. 칭찬과 격려뿐 아니라 때로 따끔하게 혼도 내고, 놀 때는 또 신나게 놀아도 주기도 했다. 그뿐인가? 슬플 땐 같이 끌어안고 울기도 하였더랬다. 그랬다. 누군가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살과 시어머니의 일상을 들으면 예쁜 늦둥이 딸 하나 키우는 줄 알 정도였으니…. 
 정말 존경스럽다. 존경스러워!
그때도 나는 수시로 이런 감탄을 하곤 했다. 하지만 보살이 시어머니를 대하는 행동과 말에 내가 홀딱 넘어갔다고 생각하신다면 오해다. 그런 행동과 말 정도는 자기 자신을 살짝 속여서라도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보았다. 나는 말이나 행동보다 마음을 보는 사람이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예쁜 딸 이상의 사랑으로 보살핀(누가 믿겠는가마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보살은 시어머니의 사십구재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지냈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는 마음을 보는 사람이니까.^ ^
 보살의 시어머니는 병을 앓기 전에 생활하셨던 서울의 봉은사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형제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음을 모아 서울의 봉은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제삿날이 돌아오면 서울 나들이를 준비하는 보살! 생전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서울의 봉은사에서 온 가족이 모여 예불을 모시고 부처님 말씀을 함께 듣는 복락을 누린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는 까닭에 꽃놀이며, 그 흔한 올레길 한번 맘 놓고 걸어보지 못했던 걸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꼭 필요한 외출이라도 마음을 졸이며 후다닥 갔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그런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는 자신의 제삿날에 서울 나들이를 선물하고 가셨으니 한 세상 멋지게 회향을 하고 가신 셈이다.
 아, 지금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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