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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비어있음[空]
유 현

우리나라 사찰의 안팎에서 법회를 열 때 사부대중들은 꼭 빠짐없이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나 자신도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현장 법사가 인도의 옛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프라즈냐아 파라미타 흐리다야 수트라』(Prajñā Pāramitā hrdaya sūtra)를 한역한 반야심경을 복 짓는 생각에서 우리말로 마치 만트라(mantra)를 외우듯이 읽기만 했지,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에 국내의 불교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여 내놓고 있는데, 경주의 유마거사로 불리는 지인의 안내로 참신한 느낌을 주는 반야심경을 정독할 기회를 갖게 됐다. 
600권이나 되는 『마하 프라즈냐아 파라미타(대반야경)』 안에서, ‘아발로키테슈바라’(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가 설법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은 소본(小本) 『반야심경』뿐이고, 이 경의 출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뒤 500∼600년 후라고 이야기한다.
‘고귀한 보디사트바 아발로키테슈바라가 심오한 프라즈냐아 파라미타(반야바라밀)의 실천에 머물고 있을 때, 다섯 스칸다들(色·受·想·行·識) 모두가 실체가 비어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에서 무엇이 비었다는(空) 말인가? 
보살은 색계 4선정에 머물며 체험한 바를 이야기 한다. “다섯 스칸다들은 텅 비어 있는,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이 아니라 거기에는 모든 것이 고스란히 그대로 있다. 오장육부도 뼈도 피도 그 밖의 모든 것이 꽉 찬 그대로 있다. 또 마음은 느낌과 생각과 갈망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오로지 스스로 존재하는 (sva-bhāva)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고, 안정되고, 불변한 ‘나’라고 할 만한 실체만 없다.”라고.
‘비어 있음’이란 어떠한 현상일까? 해안의 절벽 위에서 파도들을 보라. 바다에 어디 안정되고 그대로 있는 불변한 파도가 있는가. 거기에는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파도는 없고 오로지 “파도침”만 있다. 이와 같이 일체가 한낱 흐름-과정일 뿐이라는 말이다. 
 「라훌라 상윳따」(S:18)에서 라훌라에게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名·色, nāma-rūpa)은 ‘내 것’이다, ‘나’다,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비어있음’(순냐타아)은 바로 그런 뜻이다.  
무아(無我, anattā)의 가르침은 불교 특유의 것으로,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무아는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의 명상을 통해 체험된다.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프라즈냐아 파아라미타)의 수행을 통해 ‘비어 있음’(순냐타아 sun͂n͂atā; 空)과 ‘흔적 없음’(아니밋따 animittā; 無相)과 ‘기울지 않음’(아빠니히타 appaņihitā; 無願)의 세 가지 해탈의 문을 통과하여 마침내 니르바나(열반)에 이른다. 그리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조린다. “가테가테(실라:戒) / 파아라가테(사마디:定) / 파아라상가테(프라즈냐야;慧) / 보디(깨달음) / 스바아(깨달음의 완성에 대한 감탄사)”
무아란 자아의 교설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그 무엇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자꾸만 자아를 확인하려 든다. “나는 변호사다”라고.
나를 구성하는 오취온(五取蘊) 중 정신에 속하는 네 가지(受·想·行·識)를 지금·여기의 명상 속에서 떼어내어 따로따로 살펴본다. 이 넷은 한갓 현상으로 발생하였다가 잠시 머물고서는 스러져버림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다.
12연기의 아홉 번째 고리인 취착, 즉 매임이 자아의식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그 때문에 ‘나’라는 관념이 생겨나며 그래서 ‘내’가 있게 되고, ‘내’가 있는 이상 ‘내 것’을 소유하기 위해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도 닦음은 무엇을 성취하여 손에 넣은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놓아주는 과정, 버림의 과정이다. 물질이나 느낌은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나 홀로의 명상은 해탈, 열반으로 가는 사다리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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