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조계산 선암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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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조계산 선암사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4.1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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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83)

 

1920년대 총독부에서 만든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선암사 전경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군에 위치한 조계산에는 유명한 절이 두 곳 있다. 승보사찰 송광사와 태고종 종찰인 태고총림이 있는 선암사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저런 이유로 좋아하는 절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절 셋을 꼽으라고 묻는다면 아마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다음 세 사찰을 꼽을 것이다. 바로 불국사, 부석사 그리고 선암사이다. 물론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 화엄사, 해인사 등의 사찰이 그만 못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개 어떤 장소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그 장소에서 경험했던 어떤 일이 좋은 의미로 뇌 속에 강하게 낙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한 장소나 프로포즈를 받은 장소, 좋아하는 사람과 자주 걸었던 길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분 좋게 만드는 장소이다. 앞의 세 절이 다른 절에 비해 더 인상 깊었던 이유는 첫인상과 무관하지 않다. 첫인상이 좋으니 절에 대해 공부해서 다시 찾게 되었고, 어느 정도 알고 나서 다시 찾아보니 보이는 것들이 이전과 다르고, 그래서 또 찾고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다.

선암사 해우소인 뒷간


 선암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 대학원에서 간 송광사와 선암사 답사 때였다. 송광사를 먼저 답사하고 조계산을 돌아서 선암사로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송광사와 선암사를 가로막은 산을 질러서 가는 계획을 세웠다. 예전 스님들이 두 사찰을 다녔던 그 길을 걸으며 ‘순례길’이라 이름을 붙이자 얘기했었는데 지금 두 사찰을 이은 길을 ‘천년불심길’이라 부른다고 하니 나름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6㎞ 남짓한 거리지만 산이 깊다보니 넉넉히 3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선암사에 대한 첫 기억은 산과 고개를 넘어 다리가 무거워져 갈 때 숲을 나서자 짠하고 나타난 허스름한 쓰레트 지붕의 주막으로부터 시작한다. 잠시 쉬면서 마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의 힘으로 내리막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울창한 숲을 사이로 물소리가 들리며 멀리 선암사의 얼굴인 승선교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를 지나 온갖 꽃들로 만발한 기분좋은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어머니 품안처럼 편안한 선암사가 나온다. 산행으로 피곤할 때 맛 본 시원한 막걸리, 아담한 승선교와 꽃길이 선암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 만남은 1990년대 중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선암사와 고창 선운사 유물 조사에 조사원 자격으로 며칠 동안 선암사에 머무르며 불화 등 유물들을 조사한 때였다. 그 때 직접 유물을 보고 만지는 호사는 물론 밤낮으로 다른 선암사의 아늑한 분위기를 제대로 경험했었다. 게다가 양념이 듬성듬성한 겉절이와 강된장으로 끓인 찌게뿐인 반찬이었지만 각 재료가 지닌 제 맛이 온전히 느껴지는 깔끔하고 담백한 절밥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에도 몇 번 불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에 갔었지만 그 때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기억에 남는 최근의 답사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와 둘이서 갔던 때였다. 불교미술을 공부한다고 여러 사찰들을 돌아다녔지만 정작 어머니를 모시고 가 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마침 대구에 가 계셨던 어머니를  모시고 남해 보리암을 거쳐 선암사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선암사와 백양사를 보고 다시 대구로 갔다. 제주도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바쁜 여정이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모자가 이런저런 옛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거의 떨어져 있어서 항상 죄송스러웠는데 짧은 시간이나마 효도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절이기에 선암사는 한상 내게 애틋한 절이다. 
 선암사의 절집들도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난리에 대부분 불에 타버렸고, 현재 남아 있는 절집들은 그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그것도 여러 시대를 거치며 하나 둘씩 지어지다보니 가람 배치가 무질서하게 느껴진다. 사실 다른 고찰들에 비해 무질서하다. 하지만 그런 무질서함이 다른 절들과 달리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일주문에서 종각, 만세루, 대웅전으로 이루어진 주축 외에 여러 개의 축으로 영역이 구분된다. 대웅전 뒤에 자리한 원통전, 응진각, 각황전 영역은 사이사이에 작은 화단들이 마련되어 사시사철 다양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게다가 건물들이 한 번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추가되고, 조금씩 보수하며 유지되어서 다른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단아함과 고풍스러움이 풍겨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


 개인적으로 선암사 절집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해우소(解憂所)이다. 근심을 푸는 곳, 참 이름을 잘 지었다. 소변이든 대변이든 급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없을 것이다. 측간(뒤깐)이라고 한글로 쓰인 곳으로 들어가면 칸은 나누어졌지만 쪼그려 앉으면 머리가 밖으로 나와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어 당황스럽고, 10여 명이 한꺼번에 함께 있을 수 있는 크기와 높이에 다시 한 번 더 놀란다. 게다가 나무 창살 사이로 밖에 있는 사람들이 환히 보이니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순간 당혹해진다. 겁내지 마라.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시사철 다른 꽃과 푸른 하늘을 보며 가장 큰 근심을 해결하고 자유로워지는 공간이다. 해우소 입구 반대편에서 보면 해우소는 2층 건물로 2층이 볼 일을 보는 곳이고, 1층은 배설물을 받아두는 공간이다. 이와 같은 구조이다 보니 ‘서울에서 온 신도가 측간에서 볼 일을 보고 서울에 돌아간 뒤에야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는 우스개 소리가 전하기도 한다. 시인 정호승은 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선암사 해우소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친구 사이에는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많을수록 더 애틋해진다. 답사 여행은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는 좋은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가까운 사람과 선암사에 가보자. 만일 오랜 근심이 있다면 햇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선암사 해우소에서 쏟아버리자. 그래도 남으면 승선교 아래 개울의 찬 물에서 씻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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