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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치유숲 위빳사나 집중 수행

관찰하고 새겨야
무상과 무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

 

위빳사나 집중수행에 임하기 전에 마하시 우 소다나 사야도의 법문에 경청하고 있다.

 

마하시 우 소다나 사야도의 지도로 4월15일부터 21일까지  하루 14시간씩 위빳사나 집중 수행을 하고 있는 제주치유숲(센터장 정소정)을 찾아 스님 법문을 함께 듣는 시간을 가졌다. 
스님은 먼저 “위빳사나 수행은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기 위해 하는 수행”이라며 “사실대로 바르게 알도록, 볼 때마다 ‘보인다’, ‘보인다’라고 명칭하고 관찰하고 새긴다”고 했다.  
들을 때도 ‘듣는다’ ‘듣는다’ ‘들린다’ ‘들린다’로 관찰하고 새기며, 냄새를 맡을 때도 ‘맡는다’ ‘맡는다’고 새기고 혀로 맛을 볼 때도 몸에 감촉이 닿을 때도 마찬가지로 관찰하고 새긴다. 
스님은 “처음 수행할 때는 바로 관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배에 마음을 두고 관찰하면서 들이쉴 때는 ‘부푼다’ ‘부푼다’로 관찰하여 새기고 내쉴 때는 ‘꺼진다’ ‘꺼진다’고 관찰하여 새긴다”고 했다.
잘 안되면 마음을 기울여보거나 배에 손을 얹어놓고 관찰하면 부풀고 꺼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을 관찰할 때 명칭을 붙어 관찰하는데 집으로, 회사로, 가정으로, 달아나는 마음을 관찰해서 ‘달아남’ ‘달아남’ 하면서 새기고 다시 ‘부푼다’ ‘꺼진다’로 돌아오면 된다. 구체적인 망상이면 구체적인 망상이라고 명칭을 붙여 새긴다. 예를 들면 ‘만난다’ ‘만난다’ ‘대화한다’ ‘대화한다’로 새기고 다시 ‘부푼다’ ‘꺼진다’로 돌아온다. 
또한 관찰하면서 ‘생각함’ ‘생각함’      ‘숙고함’ ‘숙고함’ ‘계획함’ ‘계획함’ ‘안다’ ‘안다’로 새기고, ‘좋아함’ ‘좋아함’    ‘지겨움’ ‘지겨움’ ‘기쁨’ ‘기쁨’ ‘실망함’ ‘실망함’ 등으로 거듭거듭 관찰하며 새기라고 했다. 
스님은 여기서 “왜 관찰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거기에 대한 답 역시 명쾌하게 “관찰하지 못하면 사실대로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관찰하지 않으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라고 잘못 여기며, 어릴 때부터 평생 무너지지 않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행에서 유의할 사항으로는 참아야 하는 것을 첫째로 꼽았다. 우선은 참아야 열반에 이를 수 있으며 참아야 정등각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못 참는가 하면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김 삼매 지혜가 성숙되려면 중간에 쉬면 안 된다고 했다. 스님은 “쉬지 않고 해야 단계가 무르익어 힘을 갖추게 된다”고 했다. 스님은 이것을 나무를 서로 비벼서 불을 얻으려는 노력에 비유했다. 
경행하러 갈 때 관찰하면서 일어나면 눈으로 바깥 현상이나 경치를 볼 수 있어도 마치 장님처럼 관찰해서 새기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했다.
경행할 때도 다리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오른발 오른발 왼발 왼발 듦 듦 놓음 놓음 세 번째는 듦 감 놓음으로 관찰하면 된다. 
이렇게 좌선과 경선을 통해 관찰하면 물질과 정신을 구별해서 관찰하는 지혜를 얻게 되고 원인과 결과도 분명하게 구분하여 알게 되지만, 수행하지 않으면 물질이나 정신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름 붙여진 것이 눈 한 번 깜박거리는 시간조차도 생멸하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여 알게 된다. 마음으로 괴로운 분들은 왜 괴로운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거듭해서 관찰하다보면 무상과 무아의 지혜를 알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향상되고 무르익고 성숙되어질 때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아라한이 그러했듯이.    
 

김은희 기자  gim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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