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 무 - 조 지 훈 (1920~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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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무 - 조 지 훈 (1920~1968)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4.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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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의 마음을 젖게 하는 한 편의 詩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나니 깍은머리 박사꼬깔에 감추우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양 하고

이 밤 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은 청록파의 한 시인이다. 주로 민족의 정서와 불교적 인간의식을 보여준 시들을 많이 썼다. 이 시는 전통적인 시조의 4음보의 율격으로 읽을수록 리듬감이 살아나 음악성이 저절로 일어난다. 화자는 ‘승무(僧舞)’라는 춤을 통해 세속적인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춤을 추는 동작을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오동잎에 달이 지는 밤에 나비 같은 고깔을 쓴 여승의 춤사위가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세속적인 삶의 번뇌를 삭혀내는 여승의 내면세계를 알아차리게 하고 있다. 진지한 그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찡하게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나빌레라’ 같은 예스러운 표현과 첫 연과 마지막 연의 수미상관은 더욱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얼마나 감칠맛 나는 가락인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저절로 느끼게 하고 있다. 
/글.시조시인 오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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