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미소 짓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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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미소 짓는 마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4.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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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제주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꽃은 단연 ‘유채’다. 성산 일출봉 입구나 산방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핀 샛노란 유채꽃을 보노라면 누구나 살포시 미소 지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벚꽃이 지고 나니 아란야 농원에도 황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감귤나무의 생육 상태를 살피려고 문밖을 나섰더니 밤새 누구랑 입맞춤했는지 벙긋거리며 내 발길을 잡는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4월 중순, 뜰의 구석진 곳에 초록빛이 짙은 잎사귀 사이로 노란 꽃을 잔뜩 피운다. 
매화에 밀려 뒤뜰을 지키면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갈대처럼 숲을 이루어 조용히 살아가는 이 꽃들을 바라본다. 코끝을 자극하는 은은한 향기에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힐링(healing) 멘토 마가 스님은 “내가 먼저 웃을 때 내 마음 속에 꽃이 피고, 내가 먼저 웃을 때 행복해진다. 지금 이 순간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괜찮아, 잘 될 거야, 그럴 수도 있어’라고 웃음꽃을 심으면 여러분 인생은 행복으로 향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MBC의 전설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의 뉘앙스가 있는 듯하다.
자극받아 일어나는 웃음, 조건 지어지고 형성된 웃음, 의도된 웃음이 과연 행복한 마음의 암시를 클로즈업한다고 볼 수 있을까. 문득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떠올려 본다. 실존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말했다. 저것이 바로 인간 실존의 참모습이라고! 
세계적 불교학자인 로버트 서먼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명예교수는 한국에 올 때마다 우선순위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만난다고 한다. 미륵보살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져서.
부처님께서 특정 장소에서 미소를 지으신 것은 초기경전의 여러 곳(M81, M83, A5:180)에서 확인할 수 있다.『아비담마』에서는 이와 같은 미소 짓는 마음은 아라한들과 벽지불들과 부처님들에게만 일어나는 특유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또 『청정도론』에서는 기쁨이 함께하고 원인을 가지지 않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한다.
이 작용하는 마음의 참뜻은 무엇일까? 화두가 풀리지 않던 중, 「향기 도둑 경」(S9:13)을 읽고 나서 어슴푸레하게 이해하게 됐다. 숲속에 머물며 수행하는 어떤 비구가 걸식에서 돌아올 때마다 연꽃의 향기에 탐닉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하늘의 신이 비구에겐 향기에 대한 갈애가 늘어나고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여 연민을 일으켜 게송으로 그 비구를 경책한다. “그대에게 주지도 않은 물에 핀 연꽃 향기를 맡는 것은 비구여, 일종의 도둑질과 같으니 그대는 향기의 도둑입니다.”라고.
그 비구는 변명한다. “나는 갖지도 않고 꺾지도 않고, 다만 물에 핀 연꽃의 향기만 맡았을 뿐이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대는 나를 향기의 도둑이라 말합니까? 줄기를 파내는 자들과 꽃들을 꺾는 자들도 있거늘 이러한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습니까?”
단지 냄새 맡은 행위는 형법상 절도가 아니다. 출가사문에겐 향기에 대한 갈증이 수행의 걸림돌인 것이다. 갈애란 가장 저열한 동물적 탐닉으로부터 가장 품위 있는 정신적 즐거움에 이르기까지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증이다. 갈애는 수분과 같은 역할을 하여 생명체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세존께서 비유해서 말씀하셨다.
누구나 추운 겨울을 지나서 봄나들이 나간다. 산이나 들에서 핀 예쁜 꽃을 보고, 새 소리를 듣고, 꽃향기도 맡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란 볼 때 봄만이 있고, 들을 때 들음만이 있는 갈애가 없는 마음이다. 갈애는 무명과 짝을 짓고 업과 과보의 회전을 일으키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다. 
어느새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 초록빛 세상이다. 무상을 알고 보면 붙잡기를 하지 않고 놓아버리게 된다.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바람처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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