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상태바
무꽃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02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정진의 ‘길 위에서’ (18)

섬을 노랗게 물들였던 유채꽃이 지고 있다. 유채꽃은 지고 있고, 내 차 안에 무꽃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차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을 마주치는 보랏빛 무꽃 덕분에 나는 한동안 보랏빛 꿈을 꿀 것이다.
 “옛날 영감들은 겨울이 되면 집안에서 무를 심어서 키웠어. 그러면 집안에 해로운 물질을 무 이파리가 다 흡수해.” 지난겨울에 한 건강잡지에서 읽은 인산 김일훈 선생의 말씀에 따라 나는 바로 큰 토기화분에 무를 다섯 알을 심어 거실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홀더 컵에도 무를 한 알 심어 키웠다. 
 거실에 심은 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초록 잎은 무성해졌고 겨울 내내 우리 집 공기는 초록이었다. 그렇게 거실의 무가 초록빛을 뿜뿜 뿜어대며 신나게 자랄 때도 나 홀로 무는 차 안에서 홀로 겨울을 견뎠다. 그래도 얼어 죽지는 않고 한참을 퍼렇게 멍이 든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조금씩 조금씩 초록 이파리를 내밀었다. 그렇게 느린 호흡으로 겨울 한 철 출·퇴근길을 함께 한 무가 기특해서 나는 주차 할 때면 햇볕 드는 쪽으로 차를 세워주었다.
 상막한 겨울 내내 마음에 초록물을 들여 준 거실의 무가 먼저 보랏빛 꽃을 피웠다. 혼자보기 아까워 지인들에게 사진을 찍어 올리니 신기하고 놀랍다는 반응이 올라온다. 
 “이게 정말 우리가 먹는 무가 맞아? 친환경 공기정화기 괜찮네! 나도 나중에 한번 해 봐야지! ”
 나중에 한번 해봐야지 하는 말에 나는 웃는다. 그는 평생 하지 못할 가능성이 꽤 높으므로….
 가장 빠른 때는 언제인가? 지금이다.
 가장 느린 때는 언제인가? 나중이다. 
그럼에도 권한다. 겨울에는 꼭 한번 무를 키워보시라!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 화분을 보고도 그 무가 그 무인 줄 모른다. 우리 집 거실 토기화분에서 자라는 무는 이미 채소밭에서 자라던 그 무와는 180도 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 차에서 무를 만난 친구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이 언제 무를 그토록 사랑스럽고 아까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모두들 무를 바라보는 눈에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난다.
 차 안에 무는 이제 막 꽃을 피웠다. 거실 무보다 한 달 보름이나 늦었지만 기어코 보랏빛 꽃을 피우고만 내 차안의 무꽃, 하도 기특해서 마음으로 꼭 안아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