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사랑초 꽃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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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사랑초 꽃 마중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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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누군가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말하지만 너와 나의 마음에 사랑이 싹 트는 달이 아닐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들이 연이어져 있어서다. 오월에 꾸는 꿈은 그것이 아무리 고달픈 꿈이라도 사랑의 꿈이 아니어서 안 되겠지.
내 아란야 농원의 그늘진 곳을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기던 사월의 황매화의 출렁임도 오월의 초입에 시들해지더니 그 빈자리를 사랑초가 채운다.
뜰 안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여 사랑초가 분홍 꽃을 무더기로 피운다. 밤이나 흐린 날에는 잎이 오므라들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잎을 활짝 넓게 펼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랑초의 잎 모양이 심장을 닮아 사람들은 사랑초의 꽃말을 ‘당신을 버리지 않을게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몇 해 전 아내는 처음 보는 자색 식물을 가져와 화분에 심어 남쪽 창가에 놓았다.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 ‘사랑초’라 했다. 그때 아내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부부 사이에 사랑이 넘치면 꽃이 많이 피고, 사랑이 없으면 안 핀데요”라고 말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다.
처음 가져올 땐 꽃망울이 달려 있지 않아 꽃을 보지 못했다. 이른 봄 아침 눈을 떠 남쪽 거실 화분들을 바라보다 난 깜짝 놀랐다. 곱고 작은 아이 눈망울 같은 하얀 꽃들이 자색 이파리 사이에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내를 부르며 꽃이 피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는 유난히 사랑초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여러 해 전 틈틈이 농업기술센터에서 원예교육을 받더니 정원 가꾸기에 프로가 될 정도로 솜씨가 늘었다. 수선화 군락 옆에 마치 연두색 나비들이 올망졸망 모여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는 모습처럼 밖에도 사랑초를 심어 이젠 무성하다.  
뜰 안이나 거실의 사랑초 꽃이 부부사이나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면 무성하게 피고, 사랑이 없으면 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월에 들어서며 매일 아침 사랑초 꽃을 마중하며 지난날을 성찰해본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어쩌다 부부간의 다툼이 있어 냉랭한 기운이 돌 때면 사랑초가 지는 건 아닌지 하고 노파심이 들 때도 있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고 또 사랑을 받고 싶지만 착한 공덕을 쌓아야만 행복과 사랑이 깃드는 걸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남을 괴롭힘으로 사랑과 행운을 쫒고 있으니 등잔 밑이 어두울 수밖에.
‘석가족의 성자, 부처님, 여기서 탄생하셨도다.’라는 명문은 네팔의 룸비니에 세워진 아쇼카 석주에 새겨져 있다. 기원전 624년 사월 초파일 여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심으로써 우리 중생들은 생사윤회의 고통과 쇠사슬을 끊고 이고득락離苦得樂의 피안으로 건너가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고따마 붓다의 전도 선언은 요익饒益중생이다. 지혜의 빛과 사랑으로 위아래로 너르게 고르게 중생들을 이롭게 하라는 거룩한 가르침이다. 오월 한 달만이라도 모든 유정들이 다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사랑 실천이 부처님과 함께 하는 사랑초 마중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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