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회 칼럼 - 가정의 달과 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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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회 칼럼 - 가정의 달과 역지사지(易地思之)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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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현<제주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길상회 회장>

여기 길 떠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모셔야 할 어버이가 계셨으며, 형제자매는 물론 사랑하는 아내와 갓 낳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또 자신이 이어야 할 가업도 있었고, 자신의 미래 또한 창창하게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것을 두고 맨 몸으로 길을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행 길의 뻔히 보이나 자신이 이뤄내야 할 일생일대의 과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누구의 이야기인지 이미 눈치 채신 분도 계실 것으로 압니다.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의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와 동일하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 또는 누군가의 부모입니다. 우리의 부모 또는 자식이 석가모니와 같이 나와의 인연을 끊고 자기만의 길을 떠난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을 선뜻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아마 모두들 말리겠지요. 특히 자신의 자녀가 무엇인가를 하겠다며 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면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왜 그걸 하려 하냐, 그게 밥벌이가 되겠냐’고 따지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들이 보여주는 모습일 겁니다. 필자 또한 그런 마음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고타마 싯다르타가 길을 나설 때 그의 아버지가, 그의 아내와 아들이 그를 가지 못하게 막고 또 막아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아마 고타마 싯다르타의 깊은 뜻을 모르고 막아서는 가족을 오하려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역지사지’는 아시다시피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에 그리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기에 ‘역지사지’에 인색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상대편의 처지를 먼저 생각해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부모이기에 이해해 달라고, 자식이기에 먼저 이해해 달라고 강요부터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기에 ‘가정의 달’에는 가족끼리 먼저 ‘역지사지’를 실천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역지사지’로 인해 고타마 싯타르다가  ‘부처’가 되는 길을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행의 길이 뻔히 보이기는 하나 그 길을 자신의 힘으로 지나오며, 자신만의 방법론을 터득했기에 자신만의 깨달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역지사지’로 인해 우리의 자녀 또한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달 5월은 그렇게 가까운 가족들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먼저 열어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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