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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광명 누리에 충만하기를 소망하며
보산 김보균<주식회사 탐라향 대표이사>

해마다 4월이면 다양한 연등이 제주의 누리를 환하게 밝힌다. 
의미도 제각각이어서 건강기원, 자녀들의 학업성취, 사업성취, 가업번창, 상하 권속 제영가의 극락왕생 등 각각의 소망을 담아 불을 밝힌다. 형형색색의 수만큼이나 소망하는 사연들도 많으리라. 연등 끝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쪽지엔 불자들의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들이 따라 흔들리고 있다. 쪽지에 적혀있는 소망들을 읽다보면 못다 버린 번뇌심이 일어난다. 
건명 ooo 곤명 ooo 장자 ooo 장녀 ooo 장손 ooo 등등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연등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설일체 유부경’에 기록되어있는 등불의 유래를 보면 부처님 당시 아사세 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 자리를 밝히는데서 유래된다. 이때 ‘난타’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름등불 공양을 올려 공덕 쌓는 것을 보고 자신도 복을 쌓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팔아서 기름 한 되를 구하여 불을 밝혔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 모든 불들이 다 꺼져있는데 유일하게 난타여인의 불만 꺼지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아난과 목련존자가 부처님께 사실을 말씀드리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이 밝힌 불이므로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난타여인이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자 “네가 오는 세상 아승지겁을 지나 부처가 되리니 이름을 동광여래(東光如來)라 할 것이다.”라며 수기를 내리셨고 이에 난타여인은 부처님께 감사하며 출가하기를 청원하여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또한 화엄경에서는 “믿음을 심지 삼고 자비를 기름으로 삼으며 생각을 그릇으로 하고 공덕을 빛으로 하여 탐진치 삼독을 없앤다.”고 하였다. 
대열반경에서는 “중생은 번뇌의 어두움 때문에 지혜를 잃는데 비해 여래는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니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한다.” 고 설하고 있다.
또 다른 유래로 인도대륙을 통일함으로서 큰 업적을 세운 아사세왕이 온몸에 종기가 퍼져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명망이 있는 수많은 의원들을 초빙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에 아사세왕은 부처님을 초대하여 병이 나을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말하기를 인도대륙을 통일하는데 커다란 업적은 쌓았으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생하는 업을 지었으므로 정성을 다해 참회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아사세왕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정성을 다해 참회기도를 올렸고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병세가 좋아지더니 마침내 병이 다 낫게 되었다.
병이 다 나은 것을 확인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가려하자 아사세왕은 궁에서 기원정사까지 가는 길에 등불을 켜서 길을 환하게 밝혔다. 부처님께서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길을 따라 편안하게 기원정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또 다른 사례는 부처님께서 인도의 한 지방을 순례하고 계실 때 지역의 한 장자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이에 부처님은 승낙을 하게 되었고 장자는 부처님이 오시기로 약속한 날 먼 길까지 등불을 밝혀 부처님께서 길을 찾아오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등불은 어두움을 밝힌다는데 근본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어두운 곳에 필요한 것이고 어두움이 사라지면 등불은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름을 태워 불을 밝히는 것은 마음에 일렁이는 온갖 욕망과 번뇌를 태우는 행위이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지혜의 광명이 환하게 밝혀진다는 것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고려시대의 연등회(燃燈會), 조선초기의 관등(觀燈)놀이나 연등제(燃燈祭)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연등제의 역사가 변천하면서 연등을 밝히는 의미는 연등을 밝힘으로써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고 객관(客觀)의 세계인 대상(對象․육경)의 바른 이해를 통해서 피아(彼我․객관과 주관)가 둘이 아니라 일원화(一圓和․한몸)임을 자각하고 공생 공존하는 화쟁심(和爭心.다툼이 없이 화합함)을 내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불은(佛恩)에 감사하고 지혜를 밝히는 간등(看燈)이나 관등(觀燈) 또는 신라시대의 팔관회 의식(八關會 儀式)을 비롯한 연등과 관련한 모든 행위들이 같은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근세의 연등점등식이나 관련되는 일체의 의식과 행위들 역시 이와 다름이 아니다. 
하나의 연등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마음속에 일렁이는 일체의 욕망과 번뇌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지혜의 불을 밝히고자 하는 자각이 일어날 때 등을 밝히는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살아있는 자를 위해 소원성취를 비는 행위나 이미 망인이 된 영가들을 위해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기복적 의미를 두고 불을 밝힌다면 그것은 샤머니즘에 가까운 행위일 수밖에 없다. 참 불자라면 어떤 마음으로 연등을 밝히고 있는지 스스로 마음의 상태를 성찰해 봐야할 일이다.
환하게 밝혀져 있는 연등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연등에 불을 밝히면서 어떤 자각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서 지혜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담백한 소망을 마음 밭에 심어놓는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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