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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부처님
보문 이도현<본지 객원기자>

“예수님과 부처님은 인류역사에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두 송이 꽃이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다. 단순 비교하는 것으로 두 분의 참된 모습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차이와 다름을 봄으로써 우리 불자들이 두 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기본 자료부터 살펴보자.
탄생은 부처님이 기원전 BC 6-5세기경 인도 룸비니동산에서, 예수님은 BC 4-7년 전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에서 태어났으며, 부처님이 예수님보다 400~500여년 정도 앞선다. 왕족이라는 부처님의 고귀한 신분은 모든 인간의 고귀함을 상징하고 전생의 복덕과 공덕을 의미하며, 추운 겨울날 지저분한 마굿간에서의 예수님 탄생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신(神)이 임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실제 예수님의 길은 낮은 곳으로 차별받는 곳으로 고통당하는 곳으로 억울한 곳으로 가서 이들을 섬기며 위로하고 사랑하셨던 분이다. 성장과정을 보면 왕자의 신분인 부처님은 부유하고 여유로운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은 목수를 직업으로 삼아 삶을 이어갔으며, 당시 목수의 사회적 지위는 농민과 천민 사이에 있는 신분이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과 7일간의 선정 및 파순마왕의 유혹을 극복하여 35세에 나무아래서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예수님은 30살이 되었을 때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 황야(사막)로 가서 40일간의 금식기도와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성령의 체험,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을 유혹하며 파순마왕의 제시한 것은 쾌락, 영원한 삶, 권력이었으며, 부처님은 이것들의 실체가 없음을 보게되자 패배를 인정한 마왕은 물러가고 부처님은 “나는 온갖 것을 이긴 자이다” 라고 스스로 선언하신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나무 아래 공간을 보리도량이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시험은 부귀, 명예, 권력이었으나 이를 물리치며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고 외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선정을 통해,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시키신 분들이다. 
“길을 떠나라. 중생과 신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의 전도선언과 함께 시작된 부처님의 중생제도는 45년간 길 위에서 진행되었으며. 부처님의  포교활동은 중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자비심의 실천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느니라” 고 외치며 시작된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관통하는 핵심단어는 사랑, 정의, 평화였으며, 하나님을 선포하고 사랑과 정의, 평화로 통치되는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했던 분이다. 
부처님은 45년간의 포교활동을 마치고 80세가 되었을 때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나무 아래서 무여열반에 드셨고,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는 33살이 되었을 때 정치범의 누명을 쓰고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천수를 누리고 생을 다한 부처님의 최후의 유훈은 자등명 법등명과 함께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였다. 반면에 33살이라는 길지 않는 삶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고뇌에 찬 인간 예수의 울부짓음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이 외침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의 회한이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상(我相)의 버림이며, 비움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해야 된다. 이는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최후의 말   “나는 다 이루었노라”가 증명한다 하겠다. 
이어서 예수님은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고 부활한 지 40일 후에 살아있는 몸으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으로 모든 기록은 끝난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천백억화신으로 보듯이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로고스의 성육화    (聖肉化), 즉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드러난 존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여긴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에 있어서도 예수님이 사랑과 용서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거하는 성령의 체험을 이루는 것이라면,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통한 깨달음의 성취라는 목표를 제시한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일생은 길 위에서의 삶이었다. 길에서 태어났고 진리의 길을 찾아 길을 떠났으며 진리를 전하기 위해 길에 머물렀고 생을 다 할 때까지 길을 벗어나지 않는 삶이었으며, 길(즉, 진리) 그 자체이었던 분들이다. 
예수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며, 부처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인간은 미래의 부처인 것이다. 예수에게서 보살의 모습을 보고 보살의 모습에서 예수를 본다면 자비와 사랑은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인 불이(不二)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누구든지 나에게 공양하며 명과 복을 빌지 말라.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불교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예수님의 사랑이 교회 담장을 벗어나고 부처님의 자비가 절집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온누리에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보문 이도현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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