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을 수순함으로써 여래의 무량 공덕을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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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수순함으로써 여래의 무량 공덕을 성취”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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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스님

선남자여, 또한 항상 중생을 수순한다는 것은 진법계 허공계 시방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가지가지 차별이 있으나 이른바 알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 습기로 낳는 것 화해서 낳는 것들이 혹은 지수화풍을 의지해 살기도 하며, 혹은 허공과 초목에 의지해 살기도 하는 저 가지자기 생류와 저 가지가지 몸과 가지가지 형상과 가지가지 모양과 가지가지 수명과 가지가지 종족과 가지가지 이름과 가지가지 심성과 가지가지 지견과 가지가지 욕망과 가지가지 행동과 가지가지 거동과 가지가지 의복과 가지가지 음식과 가지가지 마을이나 성읍이나 궁전에 처하며, 내지 모든 천룡팔부와 인비인 등과 발 없는 것 두 발 가진 것 네발 가진 것 여러 발 가진 것들이며, 형상 있는 것 형상 없는 것 생각 있는 것 생각 없는 것 생각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없는 것도 아닌 이러한 여러 가지 중생들을 내가 다 수순해 가지가지로 받아 섬기며, 가지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며 스승이나 아라한이나 내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이 받들되, 병든 이에게는 어진의원이 되고 길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가리키고 어두운 밤중에는 광명이 되고 가난한 이에게는 보배를 얻게 하나니 보살이 이와 같이 평등히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능히 중생을 수순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며 공양함이 되며, 만약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여래를 존중히 받들어 섬김이 되며,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면 곧 일체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함이니라. 어떠한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으로 삼으시는 까닭에 중생으로 인해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로 인해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해 등각을 이루시나니, 비유하건대 넓은 벌판 모래밭 가운데 큰 나무가 있어 만약 그 뿌리가 물을 만나면 지엽이나 꽃이나 과실이 성숙되느리라. 어떠한 까닭인가? 만약 보살들이 대비의 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 속하는 것이니 만약 중생이 없으면 일체 보살이 마침내 무상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너희들은 이 뜻을 마땅히 이렇게 알지니,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한 고로 능히 원만한 대비를 성취하며 대비심으로 중생을 수순하는 고로 곧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도 나의 이 수순은 다함이 없이 생각생각 상속하여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행원의 아홉 번째는 모든 중생들을 수순하는 것이다. 수순이라 함은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의 뜻을 받들고 필경 그의 참된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다.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고 이롭게 하는 그 모두가 수순이다. 
경에는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여래의 무량 공덕이 성취되고 무상정각을 성취한다 하였으니 이 중생을 수순한다는 법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중생을 수순하는 데 있어서 먼저 알아둘 것은 가지가지의 중생의 차별에서 중생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중생의 마음이 평등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중생의 마음이 평등하므로 거기에는 일체 중생을 자기와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 부처님과 차별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대비심이다. 일체 중생을 평등히 보고 대비심이 성취된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바로 불보살의 마음이며 일체 중생의 청정한 마음 땅〔심지, 心地〕이다. 중생을 수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열어 쓰는 것이며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감싸고 성숙케 하는 것이며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 참된 공양을 올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수순중생’에 있어 중생은 중생이 아니다. 청정 불심의 내용이며 청정 불심의 자성 분별이라 할 것이며 수순은 일체 중생에서 청정 불심을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히 버릴 중생이 없으며 중생이 높일 불보살이 없으며, 온 법계 일체가 청정 법성이 크게 활동하고 크게 자재하며 크게 위신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수순중생’이 이러한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그 공덕은 말할 방법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중생들이 살고 있다. 낳는 형태로 말하면 태․난․습․화 4생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가지 형태로 살고 있다. 몸이 있는가 하면 없기도 하고 땅에 의지하고 초목에 의지하고 또는 허공에 의지해서 살기도 한다. 그 형상과 몸의 형태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수명 또한 천차만별이다. 가지가지 종족들이 가지가지 지역과 나라에 흩어져 산다. 마음이 착하고 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탐욕스럽고 간특한 사람도 있다. 중생들의 생활 양태도 천만 가지고 생활환경도, 지역적․문화적․인위적 상황도 가지가지다. 야만적 생활이 있는가 하면 고도의 문명생활, 그 중에는 제왕도 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도 사람 수효만큼이나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행원행자는 이들 중생을 일체 차별하지 아니하고 평등하게 대하며 오직 저들의 안락과 완전한 성숙을 위해 받들고 섬기는 것이다. 

보살이 수순할 중생들이 많기도 하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경에는 온갖 방법으로 중생을 분류해 가며 그 모두를 수순한다 하였다. 그러한 중생은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까지도 포함하며 그들의 가지가지 마음 씀씀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수순한다 하였다. 우리들은 착한 욕심, 범부로서 정상적인 욕망, 범부로서 행할 수도 있는 행동의 범위까지는 그래도 받든다 하지마는 그러한 범위 한계를 벗어나 어떠한 괴벽하거나 파괴적인 것이나 의도적 악심, 악행을 일삼는 중생까지도 수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깊게 새겨야 한다.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오늘날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대립은 생활이나 문화나 이해의 대립보다 더 큰 대립이 있다. 그것은 사상의 대립이며 지견의 대립이며 신념의 대립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사상과 신념과 종교의 대립이다. 이 대립 앞에는 높은 명분을 붙들고 확신을 가지고 진리니 정의니 하는 신조를 내세워 대립과 갈등을 쉬지 않는다. 
그것이 개인 사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한 지역 내지 세계를 쪼가리로 내어 가며 항쟁하고 고집하며 화해를 모른다. 크고 작은 헤아릴 수 없는 전쟁들이 거기서 터져 나오고 수많은 불행과 형용할 수 없는 파괴와 인간 비애와 야만적인 행동이 그로부터 싹트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심성․지견 일체를 차별하지 않고 수순하라 하신다. 이 얼마나 깊은 가르침인가. 이 얼마나 높으신 가르침인가. 이 얼마나 영원한 평화와 인간 심혼을 감싸 주는 대자비이신가. 
우리들은 가지가지 명분을 내세워 고집과 대립과 항쟁을 합리화하고 정당화를 꾀한다. 이 가르침 위에서 우리는 이런 지말적 차별심에서 용감히 뛰쳐나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열강들은 한결 같이 평화 번영을 소리높이 외치면서도 자기주장과 자기 이익 앞에 상대방과의 타협을 그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호는 평화이지만 행동은 갈등․알력․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 일체중생․일체심성․ 일체욕행이라는 현상적 차별에 걸리지 않는 넓고 깊은 지혜의 눈에서 세계를 보고 국토를 보고 중생을 보지 않는 한 전쟁의 악순환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보현행원품 수순장’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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