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차 맛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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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차 맛을 아느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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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20)

마음을 비우고 비웠어도 이 차만큼은 쉽게 내어주지 못한다고 하시며 주신 보이차 한 편을  받았다. 마음을 비우고 비운 그 스님만큼이나 나도 마음을 비우고 비운 터라( 진정한 차 맛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 확률이 꽤 높음^ ^) 딱히 탐이 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에 그냥 받아 챙겼다.
 그 뒤로 몇 번 도반들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떨어가며 귀한 보이차를 우려낼 때마다 인심을 쓰며 자랑질도 했다.
 “이 차는 말이야, 아무나 못 마시는 거야. 어떤 스님이 주신 건데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차래.”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덤덤하다. 그냥 쌉싸름한 생(生)보이차 취급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는 진한 와인색깔의 평범한 숙(熟)보이를 찾는다. 나 역시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마셔서 그런지 차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대중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으니 나 혼자 마시기로 하고 깊숙이 넣어 두었다. 아마 사람들이 좋아라하고 환호했으면 속이 없는 나는 기분에 취해서 부어라 마셔라 다 풀었을 것이다. 
 그런 어느 날, 한없이 조용하고 텅 비어 오직 나 홀로 있는 것 같은 적막한 날, 나는 드디어 그 귀한 보이차를 꺼내었다. 찻물이 보글보글 끓고, 다관과 찻잔을 데우고, 차를 넣고, 차를 깨우고, 몇 차례 숨을 보다가 천천히 차를 따랐다. 황금빛 차가 흰 찻잔에 채워지고 입가에 닿을 듯 말 듯 할 때, 바로 그때 은은한 밀               (蜜)향이 올라왔다. 
 감로수가 있으면 이런 맛일까? 이 차가 그 차가 맞나 싶었다. 차를 주신 스님이 과장되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니 좋은 차는 틀림이 없겠지만 어찌 이런 차가 있나 싶었다. 비로소 황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차향에 취해 있을 때 흥을 깨는 방해자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옆 집 꼬마였다.
 “지윤이 왜 왔어?”
 “심심해서요.”
 “그래, 그럼 너도 차나 한 잔 하자!”
 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없는 지윤이는 날마다 아이스크림, 과자, 사탕으로 심심을 해결하는 아이다. 나는 지윤이가 차를 좋아할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설사 호기심에 마셔보다 다시는 안 마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녀석이 내 앞에 떡 하니 앉더니 차를 달라한다. 차를 따라주니 예쁜 눈을 살짝 감고 홀짝 홀짝 마신다. 제법 음미하면서….
 ‘네가 차 맛을 알기는 하겠느냐?’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심심풀이 삼아 물어보았다.
 “지윤이, 차 맛있어?” 
 “네!”
 “무슨 맛이야?”
 “처음에는요, 좀 쓴데요, 그런데 목에 넘어가면 달아요.”
 “ 차 마시니까 기분이 어때?”
 “ 기분이 좋아요. 마음이 따뜻해요.”
 평소에는 산만하기기만 하던 지윤이가 차분하게 또박 또박 이야기하자 나는 흠칫 놀랐다. 차의 맛을 세심하게 읽어내고, 차의 마음까지 그대로 읽어내는 지윤이를 내가 얕잡아 보았구나 싶었다.
 한글을 앞으로 뒤로 읽는 능력을 뛰어넘어 알파벳까지 줄줄 읽어대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지윤이는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다. 물론 책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뛰어놀고, 가끔 심심하다고 말썽도 부리는 여덟 살 지윤, 아는 게 없어서 마음이 허공처럼 비었다. 빈 마음에 차를 받으니 차는 그냥 차. 옆집 꼬마 보살님 덕분에 내 마음이 만들어놓은 모양(想)도 하나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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