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상태바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5.30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익수 대기자가‘새로 쓰는 불교통신’〈17〉

 가파른 길 노승의 걸음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 놓는다. 한 발 한 발 내놓을 때마다 숨도 함께 따라 맞춘다. 땀이 비 오듯 등줄기를 따라 흐르고, 머리위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수건에 흠뻑 젖어들고, 후들거리는 부실한 다리, 앞서가는 걸음들은 어찌나 가볍게 보이는지. 내 짐만 더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봉정암. 봉정암을 향한 걸음은 그렇게 고통과 수행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입당해서 부처님 사리를 얻어 와서 오층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창건했다고 하지 않는가.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계곡과 맑은 물은 바위마다 파란 이끼를 입히고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인데도, 옥빛 가득한 맑디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물속에 빠져들 것만 같다. 철부지 없는 마음으로 풍덩 풍덩 들어가 실컷 물놀이를 하고 싶은 충동감을 저버릴 수가 없다.
 봉정암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걸음들, 오르고, 내리고, 휴식을 취하면서 오가는 얘기,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다. 산이 좋아서 산을 떠나지 않은 것일까. 구순을 바라보는 한 보살님은 열다섯 번이나 봉정암을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론 건강관리를 잘 하셨으니, 이 가파른 고갯길을 젊은이 못지않게 정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은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한 말씀 여쭸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대뜸 하시는 말씀은 딱 한마디다. “불심”이 깊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 차 ! 그렇구나. 한방에 치명타를 입었다.
 초행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쯤 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을 만났을 때 큰 소리를 땅땅 치고도 남을 것”이라고 한다.
 어둠이 깔리면서 목적지인 봉정암에 도착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니, 진신사리탑 앞에서 철야 정진하는 도반들이 풀잎들이 모인 숫자만큼이나 많다.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들이 모여든 이곳에는 행복이 넘치는 것만 같았다. 저녁 8시다. 밤은 수행시간이다. 성지순례단들은 천근만근 된 다리를 이끌고 사리탑으로 향했다.
경건한 자세로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며 108배를 올렸다. 여름밤 환하게 불을 밝힌 탑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남김없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열반의 상태가 바로 적멸이 아니던가.
 멀고 먼 성지 순례의길, 험하고 고통스러운 길, 하지만 부처님 만나려는 마음에 깔딱 고개도 환희심으로 충만해 하는 도반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듯이, 첩첩 산 속의 적멸이라니! 적멸보궁에 가서 적멸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기에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