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순례이야기 - 눈물 어린 산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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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순례이야기 - 눈물 어린 산치탑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6.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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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펑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 중에는 발길에 채는 돌멩이 하나에도 아무렇게나 밟히는 잡초 한 포기에도 그곳에 있게 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흔히 ‘그냥’이란 말을 쉽게 쓰지만,  ‘그냥’이란 있을 수가 없다. 원인이 되었든 결과가 되었든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냥’이란 말을 할 뿐이다. 
지금 앉아있는 이곳은 ‘그냥’이라 말할 수 없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탑이 서 있다. 
인도 중심부에 위치한 마드야 푸라데시 주 ‘산치’라고 하는 지명을 가진 이곳에 기원전 3세기경에 세워진 이 탑은 불교유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도 고대 유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탑이라고 한다. 
불교 유적지의 분포로 보면 너무 엉뚱한 곳이어서, ‘어떻게 이런 곳에 대탑이 세워졌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그 사연은 이렇다. 
기원전 3세기경 이곳 인도에 아쇼카 왕이 있었다. 이 왕은 지금의 인도 영토 대부분을 최초로 통일한 왕으로써 크고 작은 왕국을 굴복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투를 너무도 많이 치뤘기에 대왕이란 칭호에 걸 맞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게는 되었지만 마음 한 곳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차별없는 자비사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진심어린 참회와 다시는 칼로써 사람을 다스리지 않겠다는 맹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비의 대왕이 된 아쇼카는 자신의 영토를 돌아보던 중에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여인은 왕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이 아이는 서민의 신분인 어머니로부터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자랐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성년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병이 들어 아들을 남겨두고 이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해야 할 순간이 왔을 즈음에      “아들아, 너의 아버지는 이 나라 왕이신 아쇼카 대왕이시란다. 절대로 발설하지 말거라.” 이렇게 당부하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나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가를 해서 인도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스님이 된다면 왕궁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아버지와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어린 소년은 즉시 출가해서 뼈를 깎는 수행 정진의 공력으로 젊은 나이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스님이 되어서 아버지가 계신 왕궁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음식상이 차려져 나오고 스님들과 대왕은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이 젊은 스님은 고개를 떨군 채 마냥 앉아있기만 해서 대왕이 마침내 “스님은 왜 공양을 하지 않으시오?”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그간 꿈에만 그리던 아버지를 오늘에야 뵈오니 목이 메어 음식을 삼킬 수가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가 태어나게 된 연유를 일러주시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라고 지난날을 사뢰었다. 
가엾은 여인. 그 누구에게도 한 마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어린 여인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가 버렸고, 스님이 되어 찾아온 아들 앞에 아쇼카는 무쇠심장을 가졌어도 반은 녹아내렸을 것이다. 
그 후 아쇼카왕은 자신과 아들을 남겨둔 채 저 세상으로 떠나간 어린 여인을 생각하며 이곳 산치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2천3백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애처로운 사연 남기고 떠나간 그때 그 여인을 생각하며 풀 섶에 홀로 앉아 탑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왜 이리도 아려오는지.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인연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왔다가 한번 가면 이 육신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야속한 사실 앞에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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