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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불경
보문 이도현 <본지 객원기자>

보통 경(經)이라 함은 성인의 가르침, 늘 바르게 깨어있는 위대한 성자의 가르침을 말하며, 경전이라 성인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편찬된 것이 성경이며, 무하마드 이름으로 편찬된 것이 코란, 부처님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 불경이다.
성인의 기준은 문화적, 역사적, 민족적 관점에 따라 다르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성인이라 함은 도의 경지에 오른 분으로 만인의 스승이 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 가르침인 불교경전은 결집(結集)이라는 제자들의 모임을 통해 편찬되었다. 세존께서 열반에 들자 한 늦깎기 출가 비구가 “잔소리쟁이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좀 편하게 살겠다”라는 말을 들은 상수제자 가섭존자는 충격을 받고 부처님의 정법이 온전히 보전되고 교단의 권위를 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500명의 아라한을 칠엽굴에 불러 모아 1차결집을 단행한다. 
부처님을 시봉했던 다문제일 아난존자가 경장을 암송하고 지계제일 우팔리존자가 율장을 암송하면 모든 대중이 맞다고 동의한 내용으로 편찬된다. 이후에 율에 대한 해석차이로 제 2차 결집을, 전륜성왕으로 칭송받는 아쇼카왕이 주도한 3차결집에서 논장을 편찬하고,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을 편찬한 4차결집 등을 통해 불교의 경전인 삼장(경,률,논)은 완성된다. 결집과정에서도 ‘부처님 말씀을 보태거나 삭제하거나 변형하지 않는다’라는 대전제를 두었으며, 이는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모든 경전이 시작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경전번역에서도 五失本 三不易(오실본 삼불이)라는 대원칙을 지켜 원전의 어순을 따르지 않고 원형 형태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불설의 근본정신을 그대로 보전하기위해 가져야할 원칙을 명시하였다.
“세간이 옳다고 하는 진리는 나도 옳다고 한다”라고 하신 부처님의 언급은 佛說善說(불설선설)이 아니라 善說佛說, 부처님 말씀이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부처님 말씀이라는 보편적인 기준을 인정함으로서 불교역사에 정통과 이단의 투쟁이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성서, 바이블 등으로 불리는 성경은 구약(낡은 계약)과 신약(새로운 계약)으로 구분된다. 구약은 유대민족의 선민의식, 역사관, 민족관이 반영된 유대인만을 위한 약속, 즉 율법의 하나님, 질투와 저주와 보복의 하나님, 잔인하고 믿기 어려운 야훼하나님과 이스라엘민족 간에 맺은 배타적인 계약이다. 반면에 신약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약속한 것으로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파기한 토대 위에서 성립되었다.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한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것이며, 유대인을 포함한 전 세계인, 이방인 등 누구든지 남녀노소, 귀족노예 구분없이 맺은 새로운 하나님과의 새로운 보편적인 계약이다. 
뿌리가 같은 유대교와 기독교였지만 이와 같은 갈등으로 인해 2세기 중엽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 초기 교회의 모습은 성경이 없는 기독교였다. 예수의 12사도(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깨우친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기록 보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는 예수 제자들 중에 지식층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 멀지 않아 예수가 재림하고 천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에 제자들은 구태여 예수의 말씀을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에 더 큰 원인이 있다 하겠다. 기다리던 예수의 재림도 천국의 도래도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자 많은 기독교인들이 절망하고 동요하게 되었고 이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낀 기독교 식자층에서는 들었다고 전해지는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신약성서인 마가복음서가 기원후 70년경에 제작된 것을 시작으로 마태, 누가 복음이 만들어지고 100년경에는 요한복음이 만들어지면서 4복음서가 완성된다. 이들 중에 마가, 마태, 누가복음은 내용이 서로 비슷하여 공관(共觀)복음이라 한다. 그런데 이 복음서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목격자가 직접 쓴 것도 아니라 목격자들이 한 말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것을 듣고 쓴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 이름도 직접 기록한 실재의 인물인 당사자가 아니라 떠돌아다니며 전해진 것을 후에 이름 붙인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원본이 없고 손으로 옮겨 쓴 복사본만 존재할 뿐이다.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였다고 한다.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토속어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데, 현존하는 성경 고사본은 희랍어(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으로 5,000 여 개에 이르며 내용 또한 서로 달라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번역의 문제, 필경과정의 문제 등으로 절대기준이 되는 하나의 성경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  많은 복사본이 난무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혼란이 야기되자 서기 367년 당시 대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이들 중에서 27개를 선정하여 부활절 메시지로 전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27정경(케논/canon)체제이다. 27정경은 4복음서와 예수의 제자들이 전도활동을 기록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사도 바울 등이 전도과정을 글로 적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인 서신서 21편이 포함된다. 이후에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27권과 구약 44권을 포함하는 71권의 정전성서(正典聖書)가 공식 결정되었으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분리된 개신교에서는 구약 5권을 빼고 66권으로 된 개신교 정전성서를 확정한다. 한글성경은 1900년 최초의 한글 신약이 번역되고 1911년에는 최초로 신․구약 합본의 성경 전체가 한글로 번역되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기독교의 발생연대와 대승불교의 태동시기는 거의 때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부처님과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뜻이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무오류설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문 이도현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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