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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22)나의 꼬마 보살님

이웃이 된 지 몇 개월 안 되었는데 어찌나 붙임성이 좋은지 이웃 아줌마인 나를 이모! 이모! 부르는 꼬마 보살님이 있다.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녀석은 보면 볼수록 특별하다. 
 이 꼬마 보살님은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몰라서 책을 못 읽는다. 내 눈에는 그것도 특별해 보인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하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시겠지만 아주 중요하다. 빨리 빨리 한글을 깨치고, 영어를 깨치고, 한자급수를 딴 아이들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모 뭐해?” 
오늘도 꼬마 보살님이 문을 열고 눈을 반짝이며 내 분위기를 살핀다. 되게 심심하구나 싶어 들어오라 하니 환하게 웃으며 들어온다. 바로 위에 언니는 중학교 1학년, 그 위에 오빠는 중학교 2학년, 한창 왕성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언니 오빠가 여덟 살 꼬맹이랑 놀아주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사춘기 언니 오빠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서 그런지 여덟 살짜리 답지 않게 은근히 사람 기분을 살피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이모 뭐하고 있었어?”
 “너, 심심하구나!” 
친구랑 놀라고 하니 친구가 엄마랑 교회 갔다고 한다. 3시에 올 거라고….
자기도 가고 싶지만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간다고….
 아무래도 오늘은 꼬마 보살님의 심심을 내가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에 풀어 줄 심심이면 부처님 이야기를 들려주자 싶어서 본생경 그림동화책을 펼쳤다. 그런데 내가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이미 꼬마 보살님은 척척 알아맞힌다.  
 “이 원숭이 나쁘다! 살살 뛰어야지” 하며 코러스를 넣는다.
 “어떻게 알았어?” 하니 그림을 가리키며 “척 보면 알지요!”한다.
글자를 잘 모르니 그림의 표정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같이 펼쳐놓고 나란히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미처 그림을 읽어내지 못했다. 읽기를 멈추고 그림을 잘 보니 그림에는 글자에 없는 마음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과 교감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었다. 글자가 고정하지 않은!
 어느 토요일은 꼬마 보살님이 푸념을 했다.
 “학교는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그래도 공부는 좀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어른스런 단속에 꼬마 보살님이 이런 제안을 해 왔다.
 “그러니까 토요일 일요일만 학교 가고 나머지는 놀면 어때요?”
 꼬마 보살님의 기막힌 제안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동조해주었다. 여덟 살에 노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이 어디 있겠는가? 나랏님이야 어찌 생각하든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며 즐거워했다. 
 꼬마 보살님은 공부가 재미없어서 여행을 다니면 좋겠단다.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우주선을 탄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딱 한번 타 봤는데 지구를 보았다고 신기해했다. 지구의 일부분에 발 딛고 살면서도 우리는 지구를 봤다고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 어린이도 본 적이 없다. 잘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타면 구름 아래로 보이는 그거  지구 맞지 않은가?^ ^
 공부를 싫어하는 꼬마 보살님이 요즘 피아노를 배운다. 재미있냐고 물으니 공놀이를 못해서 속상하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제안을 했다.
 “그럼 피아노로 공을 쳐봐. 피아노로 공을 치면 무슨 소리가 날까?” 
그랬더니 꼬마 보살님 눈이 반짝, 곧바로 통통통통통 하며 손과 입으로 피아노를 친다. 신나게 친다. 이제 피아노 수업 때 공놀이를 하고 싶으면 피아노 공을 치면 되겠다고 좋아라한다.  요즘 나는 꼬마 보살님 덕분에 점점 장난기가 늘어만 간다. 나의 꼬마 보살님은 오늘도 여전히 문을 열고 묻는다.
  “이모, 뭐해?”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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