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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순수한 영혼의 순례지티베트 성지순례기 ① /보현수 임인숙

지난 5월 자현 스님의 안내로 불자 20여명과 함께 티베트 성지순례를 마친 보현수 임인숙 불자가 티베트 성지순례기를 본지로 보내왔다. 첫날과 둘째 날 참배한 파드마 삼바바에 의해 세워진 최초 승원 삼예서원과 창조사 등을 참배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편집자주>

 

내 삶을 다하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세 가지 소원 중 마지막 한가지인 티베트 순례. 오랜 세월 마음속으로 바라던 간절함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은둔의 불교왕국인 티베트는 입국자 제한과 철저한 입국심사로 긴 시간의 수속 절차에도 설렘과 기쁨으로 채워진 행복한 기다림이었다. 
자현 스님과 함께 하는 순례팀 20여명은 중국의 성도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덮었다. 처음 보는 티베트의 하늘과 땅은 그동안 꿈꾸어 왔던 간절한 기대에 응하듯이 친근하게 다가왔고 우리는 벅찬 감동으로 첫 순례지로 향했다. 
티베트는 중국 면적의 1/4을 차지하는 엄청난 땅덩어리에 인구는 고작 300만이고 우리나라의 12배가 넘는 면적이 평균고도가 3,500미터가 넘는 고원으로 구성된 나라다. 주변은 히말라야, 카라코캄, 쿤룬산맥 등 7,000 미터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하늘과 가장 가까운 대지로 불리고 있다. 오랜 옛날 지진으로 인해 바다에서 융기된 지역으로 고산지대가 대부분을 이루고 소금 성분이 함유된 모래와 산소부족으로 식물들이 자라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봄으로 가득 한데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은 산과 들은 대부분 거칠고 황량하여 커다란 코끼리 다리를 보는 듯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티베트 불교의 최초 승원인 삼예사원. 파드마 삼바바에 의해 세워졌다.


탄트라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불교는 대승의 밀교계통으로 스승을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라마교 또는 금강승 불교라고도 한다. 티베트에 불교가 처음 도입된 것은 두 개의 경로로 알려져 있다.  최초로 티베트를 통일한 손첸감포왕이 당시 불교국가였던 네팔왕국의 공주와의 정략결혼을 통해 인도의 정통 불교가 도입되었고, 또한 당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중국의 선불교가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티베트에서의 첫 순례지는 삼예사원이다. 삼예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자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라마승을 위한 최초의 공동체인 승원이 세워진 곳이며 불보, 법보, 승보가 갖추어진 최초의 사원이기도 하다. 
삼예사원은 티베트에서 제2의 부처님으로 추앙 받는 ‘파드마 삼바바’에 의해 건립되었다. 파드마 삼바바는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진 인도의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학승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있었는데 티베트 국왕의 초청을 받고 티베트로 건너와 삼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 삼예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흐름을 결정짓는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당시 티베트는 중국불교와 인도불교가 치열하게 대립되면서 국론분열의 위험수준까지 이르게 되자 국왕은 삼예사원에 토론의 장을 마련하게 된다. 중국 당나라의 돈오선승인 ‘마하연’ 선사와 인도의 정통 수행인 점수사상을 주장하는 ‘까말리 실라’ 학승 간에 2년에 걸쳐 실시된 치열한 논쟁에서 마하연 선사는 패배를 인정하고 티베트를 떠나게 된다. 이 삼예의 논쟁 결과는 티베트에서 중국의 선불교는 사라지고 인도불교의 정통불교가 티베트 불교의 주류로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초기불교의 원래 모습을 티베트 불교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티베트의 국가 중점 보호문화재로 지정된 창조사


삼예사원은 불교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지은 건축물로서 거대한 입체 만다라의 형상을 하여 그 규모가 웅장함을 자랑한다. 우주의 중심축인 수미산을 상징하는 본당(한국의 대웅전)은 금빛 지붕으로 장식하고 네 방위는 동서남북 사대부주를 형상화 한 것으로 장엄했다. 
마니차를 돌리며 불상 주변을 조용히 돌며 참배하는 티베트 순례자들에게 방해되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무릅쓰고 우리식으로 저녁예불,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이번 순례가 원만하게 회향될 수 있도록 스님의 축원으로 입재식을 하며, 첫 일정을 마쳤다. 

티베트 둘째 날. 
별거 아닐 거라고 여기며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던 고산증세가 시작 되었다. 미리 처방받고 준비한 몇 사람도 대부분 피할 수 없었다. 심한 두통과 함께 산소 부족으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온 몸이 나른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심하게 구토를 하는 분도 몇 있었다.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는 말에 준비한 생전처음 접해 본 ‘비00라’,‘팔팔0’으로 대비해도 소용이 없었다.
‘천천히 걸어라. 물 많이 마셔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고개 숙이지 말라’ 등등.. 노파심 가득한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들으며 창조사로 향했다.  
창조사는 티베트 최초의 법당이다. 즉 처음으로 불상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이 자리가 원래는 넓은 호수였는데 독을 가진 용이 있어 사람들을 괴롭히자 용을 제압하고 호수를 매워 창조사를 세우고 평화를 가져왔다는 전설을 지닌 사원이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티베트 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지어졌다. 파드마 삼바바가 거주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당나라 문성공주도 이곳에서 머물며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창조사는 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어 국가중점보호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2만개의 진주로 만들어진 관세음보살 탱화가 유명한데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그저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작은 진주를 하나하나 박아 만든 예쁜 탱화를 마음에만 간직하고 다음 순례지로 이동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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