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잠재된 번뇌까지 없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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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잠재된 번뇌까지 없애려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6.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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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순간 대상과 연기적 관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대상(경계)이 없으면 마음은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욕계 중생들에게 일어나는 54가지 마음 가운데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거나 덮어버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다섯 가지 장애라 함은 감각적 욕망, 성냄, 몸의 게으름과 마음의 무기력함, 마음의 산만함, 정법正法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의심을 포함한 해로운 마음씨를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팔번뇌, 8만4천의 번뇌를 압축하여 다섯 가지 장애라 한다. 그 중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세 가지는 모든 번뇌의 뿌리이므로 근본 번뇌라고 말한다.  
오욕五慾의 즐김은 인간의 본성이라서 내 자신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집착하고 반응함으로써 그러한 욕망을 조금도 서슴지 않고 밖으로 드러낸다. 
TV화면을 보다가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지닌 어떤 여배우의 모습이 보일 때면 외모가 영원하다든가 아름답다는 표상을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대해 불만족한 느낌이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거친 번뇌가 일어나면 마음은 부드럽지도 않고 다루기에 적합하지도 않고 빛나지도 않고 잘 부서지며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한 바른 삼매에 들지 못함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명상을 한 덕분이다. 
  왜 이런 번뇌들이 단박에 끊어지지 않고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연기의 이치에 맞지 않게 또는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에 잡도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깨닫기를 방해하는 불선不善의 정신적 흐름 또는 성향을 잠재성향(anusaya, 아누사야)이라 한다. 세존께서 「말룽끼야뿟따 경(M64)」에서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면서 인간에겐 장애(오염원)의 경향이 내면적으로 남아 있어서 마치 어린아이가 청소년기가 되면 성욕을 느끼듯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 수면 위로 드러나서 악하고 불건전한 말과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중국의 선종에서는 이를 습기習氣라고 표현한다. 여름 장마철에 습도가 높아지면 음식이 쉽게 상하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듯 사견邪見과 습기習氣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정신적 향상을 이룰 수 없다.
범부凡夫들은 무명無明에 빠져 여섯 가지의 감각 대상들이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지 못한다. 다섯 악기가 연주하는 표상들에 대하여 의미를 두고 그것들에 끌리게 되고 그것들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와 같이 무명에 대한 잠재된 성향은 결국   ‘자아’라는 잘못된 견해, 즉 유신견有身見을 일으켜 감각적 욕망 및 성냄의 잠재적 성향들에게 독버섯처럼 번져 번뇌를 일으켜 정신적 고통을 앓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잠재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비난하는 경향이나 흥분하고 공격적인 자세를 훨씬 줄일 수 있고, 마음의 평정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잠재된 성향들은 다섯 장애들이 일어나는 숨겨진 근원이며, 그것들보다 더욱 미세하여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를 멸진하기 위해서는 섬광보다 더 예리한 알아차림과 심오한 통찰 수행이 필요하다. 
 번뇌의 성품 자체가 연기된 것임을 알고 본다면, 굳이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번뇌를 부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번뇌가 곧 보리요, 보리가 곧 번뇌다.”라는 불조佛祖의 금언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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