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 햇볕 같은 부처님 (글 : 서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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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햇볕 같은 부처님 (글 : 서민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6.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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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4주년 기념 - 제5회 신행수기 공모 가작

올해 제5회 신행수기 공모에 모두 수상작 7편이 선정됐다. 이번 호에는 서민교 불자가 쓴 “햇볕 같은 부처님”을 실었다. 일찍 엄마를 잃고 시린 가슴에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다시 병마와 싸우면서 새어머니의 마음까지 품게 된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편집자주>

 

 

부처님.
누구를 사랑하는 것보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젠 압니다.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지만, 미워하는 것은 수만 가지의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웃음도 그러합니다. 웃을 때, 우리 얼굴의 웃음 근육은 여섯 개가 필요하지만, 찌푸릴 때는 정작 수십 개의 근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향해 미소 한 번 짓는 것에도 인색합니다. 화난 사람처럼 입술을 꽉 다물고 ‘네가 웃으면 나도 웃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임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논리를 부정합니다.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니요? 없는 것이 있는 것과 같다니요? 
그래서 성경의 “나를 믿으라.”는 주관적인 논리와 시적인 은유 대신 “여시아문”이라는 객관적인 서술과 산문적인 서사로 불경은 시작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를 여의었습니다. 엄마는 한글은 못 깨우치셨지만 불심만은 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을 찾으셨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조금만 늦게 와도 어머니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셨고, 운동회 날 제가 달리기에서 1등을 해도 어머니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시며 좋아서 연신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그것이 원효 스님의 정토사상이란 걸 학교에서 배우게 되었지만, 그 때는 이미 어머니는 제 곁에 안 계셨습니다. 아무리 까막눈이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고 부르면 누구나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원효 스님의 말씀은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잠 안 오는 밤, 어머니는 때때로 절에 든 도둑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대웅전의 금동불상을 훔쳐서 업고 간 도둑이 새벽이 올 때까지 밤새도록 달렸지만, 정작 대웅전만 맴돌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어서 저는 자꾸만 또 해 달라고 어머니를 졸랐습니다. 지금도 절에 가면, 저 혼자서는 성냥 하나 켜는 것도 조심스러운 것이 그 때 어머니에게서 배운 절 물건의 귀중함 덕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발우공양을 할 때에도 한 톨의 쌀, 한 가닥의 찬도 귀히 여기는 마음은 어머니께 배운 시주물의 무서움 때문일 것입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시주물만 축내면 죽어서 구렁이로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어머니는 종종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가슴 아픈 이야기는 끝내 알려주시지 않고 지병이신 심장병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가 고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찬을 많이 먹으면 반찬을 많이 먹는다고 꾸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차비 외에는 1원도 더 주시지 않는 새어머니는 화를 잘 내셨습니다. 저는 빵이나 컵라면을 사 먹는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 먹을 것을 사먹었습니다. 그러나 갚을 일이 아득했습니다. 꿈에서는 자꾸 돈을 줍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침이면 공부 때문이 아니라 빌린 돈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친구들도 저만큼 불우해 보이는 아이들하고만 놀았습니다. 엇나간 아이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이 저만큼 불우한 친구들하고 만나면 서로가 편했습니다. 저처럼 새어머니나 새아버지 아래서 자라는 아이, 고모 댁에 얹혀서 사는 아이, 지하실에서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 우리들은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절에 가는 불교학생회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서로 “전생에 지은 죄가 커서 우리가 지금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생회를 이끌어 주셨던 그리운 성수 스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들보다 마음공부를 더 하라고 그런 마음공부 재료가 주어졌다.”고 한 번 더 돌려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짜장면도 사주셨습니다. 같이 축구도 하고 스님이랑 권투도 했습니다. 그렇게 성수 스님 덕분에 우리들은 사춘기를 어긋나지 않고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 합격증을 받고 얼마 후, 감기 인 줄 알고 갔던 병원에서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때 아버지께 “길게 보아야 육 개월”이라고 했다 합니다. 열이 41도까지 올라서 사경을 헤맬 때, 꿈속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방은 밝고 환했습니다. 한지를 바른 창문에 환한 햇볕이 얇은 이불처럼 방으로 비춰 들어오고, 어머니는 말없이 저의 두 다리위에 햇볕을 끌어다 당겨서 덮어 주시려 했습니다. 방의 윗목에는 하얀 목화솜 이불이 얌전히 개켜져 있었습니다. “엄마.”라고 불렀지만 만남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그 뒤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시시때때로 다가왔지만,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난 후 저는 꼭 살아날 것 같았습니다. 깍두기도 삶아 나오는 항암식단을 먹으면서도 구토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24시간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머리는 다시 났지만, 정수리 부분에는 동그란 나이테처럼 머리카락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학생들은“가스레인지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그런 투병생활을 했다고 하면 아마 우리 학생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고 휴학과 복학을 되풀이하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영영 사이가 더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새어머니와의 관계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병문안을 오신 새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다 불쌍하다. 이 세상에 생명 있는 것은 다 불쌍하다.”라며 우셨습니다.
그 때, 저는 어렴풋이나마 새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 나아서 취직을 하면, 꼭 새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보라색으로 옷을 한 벌 해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육 개월이라던 저의 시한부 인생은 지금 30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저를 살리려고 새어머니는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도, 함월산 기림사의 관세음보살전도, 동화사의 약사여래불도 다녀오셨다는 걸 나중에야 전해 들었습니다.
올해 9월에 어머니는 무릎 관절 수술을 하십니다.
저 때문인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인공관절 수술을 하신 후에 어머니가 입원하시면, 저는 매일 가서 신문도 읽어 드리고 좋아하시는 파인애플도 매일  깎아 드릴 것입니다. 저를 살리겠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전국의 절을 순례하며 다니신 그 마음의 천 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민교야, 내가 처음 너희 집에 오니 기가 찼다. 집은 다 쓰러져 가고, 돈은 돌아가신 엄마 치료비로 다 들어갔고, 정신을 바짝 안 챙기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독하게 마음먹고 살림 규모를 줄였다. 그 때를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런데 그 때는 그렇게 안하면 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다 지난 일인데요, 뭘.”
“며느리들이 우리 집에 적응을 잘 못한다. 금방 말다툼 비슷하게 하다가 또 언제 싸웠냐는 듯이 서로 밥숟가락에 반찬 얹어 주는 걸 보면 이해를 못 하겠단다.”
“음, 그건요, 우리가 같이 살아 온 세월을, 같이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요.”
어머니와 저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습니다.
미운 정도 켜켜이 쌓이면, 묵은 장처럼 깊고 알싸한 ‘씨간장’이 될까요?
고운 정만 들어서 달디 단 간장은 다른 음식의 간도 다 달게 맞춰버리는 ‘저 혼자 잘 난 간장’이 될까요? 
부처님,
부처님이 보시기에 어느 편이 더 제자 삼기에 좋으신가요? 
그리하여 부처님.
먼 훗날에 노인이 된 저는 이래도 좋았고 저래도 좋았다고 부처님 전에 홀로 나가 절을 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마알간 햇볕이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차안과 피안의 언덕을 가로지르며, 주름투성이인 저의 얼굴위에 살포시 내려앉을 것입니다.
햇볕 같은 부처님.
햇볕처럼 아무 것도 차별하지 않는 부처님.
햇볕은 있는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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