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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부지런히 간절하게 화두를 잡아라”

 

실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혼침(昏沈)과 산란함의 연속이다. 우리가 생활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에 목표을 향해 매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뒤흔들어 버리는 갈팡질팡한 삶이 오래 계속되면 자기도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없는 흐리멍텅한 상태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것이 혼침이다. 
그런데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게 되면 산란한 마음이 차츰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밝음이 샘솟아 혼침이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우리들 자신을 물이 든 항아리에 비유해 보자. 이 육신이라는 항아리에 든 현재의 물은 탁하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다. 순간순간 오만 가지 번뇌망상에 스스로를 맡겨 놓았으니 혼탁은 물론이요 출렁임이 거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선을 시작하여 보라. 우선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망상과의 싸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화두’라는 좋은 갑옷을 입고 끊임없이 ‘?’를 챙겨나가면 일어났던 번뇌망상의 출렁임은 차츰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출렁임이 사라지면 고요함 속에서 물이 맑아지고 밝아지게 되는 것이다. 
단, 이렇게 화두를 들 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곧 번뇌가 일어나면 절대로 상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무’자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고 있는데 어제 저녁에 만났던 사람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다고 하자. 
“아, 그 사람에게 내가 실수를 했어.”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걸…….”
“그래, 다음에 만날 때는 아주 부드러운 말로 다시 이야기해야지…….”
이렇게 어제 저녁 일을 생각하다 보면 화두는 완전히 달아나 버린다. 화두선이 아니라 망선(妄禪)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화두로써 내 마음을 거두어 잡아야 한다. 일어나는 생각들을 없애려 하지 말고 오로지 “어째서 조주선사는 ‘무’라고 하셨는가?”라는 의문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오직 화두에만 마음을 두면 홀연히 일어났던 생각들이 저절로 사라져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어나는 생각들을 애써 없애려 하면 오히려 그 생각들에 사로잡혀 버리고 만다. 거듭 강조하지만, 잡생각이 일어나거든 모름지기 화두로만 돌아가라. 
‘왜?’, ‘어째서?’라는 이 의문부호 이상 가는 훌륭한 무기는 없다. 도를 깨닫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한 의심이다. 화두에는 좋은 화두, 나쁜 화두가 따로 없다. 초점은 의심이다. 간절히 의심을 일으켜 화두를 잡는 것이 최상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할 때 모든 문제는 저절로 사라진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삼매에 이르면 저절로 깨달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꾸준히 참선을 하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밝아지게 되어, 집중력이 높아지고 판단력이 빨라져서 생활 또한 보다 윤택하게 꾸려갈 수 있게 한다. 곧 참선할 때의 집중력이 생활에 그대로 응용되어 갖가지 좋은 일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인가? 마음이 평온하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다. 참선을 하라. 참선은 우리에게 이것을 선사해 준다. 잠깐이라도 좋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를 잡고 참선을 하라.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을 결코 손해보지 않을 자기를 돌아보는 공부, 주인공을 찾는 공부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보람된 일일 것이다. 
나아가 부처를 이루고자 하면 모름지기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차려서 화두를 잡아야 한다. 
“언제나 부지런히 간절하게 화두를 잡아라.” 
이것 이외에는 참선하는 사람에게 따로 긴요한 말이 없다. 오직 화두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거기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지혜(智慧)의 빛이다. 
이 지혜의 빛은 자신의 마음자리, 곧 자성심(自性心)을 보게 하고, 자성을 보게 되면 천지와 내가 한 뿌리요 만물과 내가 한 몸이 된다. 그러한 때에 내가 하는 바는 모두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실체는 누구도 볼 수가 없다. 오직 요술인 양, 그 실체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자비로써 인간과 천상의 큰 복밭이 되어 모든 중생을 제도해 낼 수가 있다. 
인간과 천상의 큰 복밭! 그 복밭에는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며, 중생의 그릇에 따라 이로움을 주는 밭이다. 그 복밭을 이룰 때까지 우리 모두 고삐를 늦추지 말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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