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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마음의 밭갈이
유 현

 “마음이 모든 법들에 앞서가고,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가 지어진다.” 『법구경』의 첫 번째 게송이다. 
이래서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무엇인지?’, 또 ‘마음을 어떻게 길들어야 하는 것인지?’라는 화두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다. 
『아함경』과 『아비담마』를 공부하면서 마음의 구조적 측면과 작용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특히 「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을 통하여 부처님의 밭갈이 도구를 알게 되면서 법열法悅이 일어났다.  
까시 바라문이 농사일을 하다가 새참 음식을 먹던 중, 세존께서 걸식을 위해서 가까이 서 계신 것을 보고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드십시오.”라고 말했다. 세존께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습니다.”라고 답하셨다.  
“사문이여, 당신께서 밭가는 자라고 공언하시지만 당신이 밭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밭가는 분이라면 여쭙노니 말씀해주소서. 당신의 밭갈이를 어떻게 이해하리까?”
세존께서 마음의 밭을 가는 쟁깃날과 몰이막대를 마음챙김(사띠, sati)에 비유해서 말씀하시며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으셨다. “믿음이 씨앗이고, 두타dhuta행은 빗물이며, 지혜는 나의 멍에와 쟁기라네. 양심은 연결하는 막대기이고, 마음은 노끈, 마음챙김은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이네.”
생소한 불교용어인 ‘마음챙김’이 팔정도의 정념正念과 같음을 알고,  「출입식념경(M118)」, 「염신경(M119)」, 「대념처경(D22)」을 차례차례 열독하면서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념처四念處를 수행하는 사띠sati행자로 변신했다. 바른 마음챙김이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sanā를 다 포용하는 아주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수행법임을 자각하면서 바깥 경계에 정신을 팔아 왔던 습관에서 점차 벗어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 생각, 갈망을 바라보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여기저기 방황하지 않도록 붙잡아 길들이는 역할을 하는 유익한 마음 작용을 빠알리 어로    ‘사띠’라 하는데, 불교학자들은 ‘마음챙김’, ‘알아차림’, ‘새김’ 등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마치 거울이 대상을 비추는 것과 같이 밖의 형상이나 색깔이 눈의 문에 부딪치면 시각의식이 일어난다. 그런데 내 거울에는 대상을 비추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어리석음, 부끄러움과 들뜸이라는 해로운 마음부수들이 일어나고, 또 때때로 탐욕과 성냄, 그릇된 견해와 자만, 후회와 게으름 등의 해로운 마음부수들이 뒤따라 일어났고 지금도 마음챙김을 놓치면 마찬가지이다. 
마음챙김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는 반대되는 아름다운 마음씨이다. 대상을 만날 때 마음챙김과 함께 있으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만, 이를 놓치고 대상을 만나면 마음은 이미 오염된 것이다. 
마음 작용이 이와 같기 때문에 마음이 어떤 대상에 집착할 때에는 반드시 동요와 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심지어 마음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얻기 위해 명상 수행하는 동안에도 느낌과 생각은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마음은 하나인데, 조건 짓는 법과 대상에 따라서 때로는 좋은 생각이나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고, 또 나쁜 생각이나 괴로운 느낌이 생겨난다.  
간화선을 집대성한 대혜종고 선사가 참선수행의 큰 걸림돌인 혼침昏沈과 도거棹擧를 제거하는 방편으로 ‘무자화두’를 권하신 것도 마음 밭갈이 방편의 하나이다. 
마음챙김의 힘이 강력해지니 입정入定이 어렵지 않고, 평화로운 머묾에서 제법무상을 통찰하니 이만하면 마치 참깨에서 기름을 짜내는 것과 같지 않는가.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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