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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 기독교교리
보문 이도현 <본지 객원기자>

불교와 기독교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바로 교리의 정의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의 교리(敎理)는 한 종교의 기본이론이자 원리나 이치로서 각종교의 종파가 규정한 신앙의 체계를 이룬다.
 교리에서의 교(敎)는 성인의 가르침을 언어나 문자로 명문화 한 것이며, 리(理)는 그 가르침에 의해 나타난 진리의 내용이다. 즉,  교리란 한 종교의 교주이신 성인이 지금 이 세상에서 실현하여 이루고자 했던 목적을 위하여 설하고 실천한 가르침인 진리를 논리적인 체계로 정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교리는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과 실천에 대한 이론적 논리적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의 교리는 성서에 대한 해석을 정통으로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후대 기독교인들의 여러 의견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 “정통” 이라고 인정한 것이 곧 교리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 신의 말씀을 인간들이 해석하여 “이것이 정통이다” 라고 인정하면 그것이 바로 기독교 교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결정된 기독교 근본교리, 양보하거나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한 절대교리가 “성육신, 동정녀 탄생, 부활, 재림, 대속, 성서무오설” 이다.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육화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드러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취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교리로서 강생(降生)이라고도 하며 무한 존재인 하나님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된 사건으로 본다.
동정녀 탄생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인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가 처녀의 몸 상태에 성령이 임하여 아이를 잉태하고 낳은 자식이 예수라는 것이다. 부활은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으로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며, 재림은 부활하여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다시 세상에 내려와서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는 최후심판의 날에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부활하고 악은 패망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될 거라는 믿음의 교리이다. 
예수의 직계 제자인 12사도를 비롯한 초기 교회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재로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대속(代贖)은 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음으로서 죄를 사한다는 속죄의 뜻이다. 
원죄를 지닌 인간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나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예수의 희생으로 모든 인류의 죄가 용서를 받게 되었다는 교리로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논리라 하겠다.  성서무오설은 신의 말씀을 빠짐없이 적어놓은 책인 성서는 성령의 계시를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틀린 부분이 없다는 교리이다. 원래의 성서무오설은 ‘하나님의 복음을 담은 성경은 인류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에 완전함, 흠없음’을 강조한 신학적 개념으로 믿음과 은총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이 곧 성경이라는 의미였으나 후에  뜻이 다르게 변질된 것이다.
이처럼 신에 관한 모든 교리가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 교리가 처음부터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의 말씀에 대한 인간들의 다양한 해석 중에서 다수의 의견을 ‘정통’ 이라 하여 교리로 확정하고 이를 제외한 해석은 이단으로 몰아 추방하고 처형하여 왔다. 기독교의 역사는 정통과 이단의 투쟁사로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해석에 대한 차이로 교파가 분리되어 만들어지는데 한국 개신교의 등록된 교단수가 370여 개가 넘는다.
이에 비해 불교교리는 단순하고 명쾌하여 불교사에서 논쟁은 있을지언정 정통과 이단의 투쟁은 없었다. 부처님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탐진치 삼독의 불이 완전히 사라진 열반의 세계, 고통 없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 부처님께서는 직접 수행을 통해 몸으로 체험한 연기법을 깨달으신 것이며 연기법은 불교교리의 핵심이 된다. 인간 세상은 고통 자체임을 진단하고, 그 원인은 무명과 갈애에 있으며, 무명과 갈애가 사라진 세계가 있으며, 무명과 갈애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 있으며, 그 길에 이르기 위한 모든 방편의 가르침이 곧 불교교리인 것이다.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중도, 공, 육바라밀 등 모든 교리가 연기법을 설명하기 위한 부처님의 방편적인 가르침이며, 이들 교리의 상호간에도 어긋나거나 모호한 부분이 없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은 그만큼 불교교리가 완전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불교의 각 종파도 교리의 해석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어떤 경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리할 뿐이다.
교리는 체계화된 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을 뜻하며, 모든 종교는 각자의 독자적인 교리를 가지게 된다.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믿음의 근거와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불교교리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기독교교리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범주오류에 빠지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범주오류 : 어떤 범주에 속해 있는 것을 다른 범주에 속한 기준으로 설명할 경우 무의미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차이는 인간이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지향점이 달라서 가지게 되는 필연적인 산물임을 고려할 때 차이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세상사이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다름을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보는 순간 자신은 사탄이 되고 마구니가 된다. 실재 많은 개신교인들은 유대인, 무슬림, 불교인, 힌두교 등 타 종교인들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여기고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사탄으로 여긴다. 예수의 핵심사상이 사랑과 용서이고 사랑과 용서를 통한 천국의 언약이 예수의 복음임을 아는 기독교인이라면 예수의 가르침을 등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문 이도현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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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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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음 2019-07-08 17:52:31

    이또한 지극히 폄훼하단 생각뿐입니다
    자세히보면 겸손과 포용으로 치장된... 공신력있는 불교신문에 굳이 타종교를 비판할것까지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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