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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에 큰 피해 입은 사찰로 사료적 가치가 높아”제주불교신문 30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⑤ 한국불교 태고종 제주교구 함덕 덕림사
함덕 덕림사 대웅전의 모습.

태양이 이글거린다. 발바닥이 뜨겁다. 모래알이 파도에 부딪치는 소리에 마음을 시원스럽게 씻어준다. 무더운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함덕리의 바닷가는 에메랄드빛에 마음이 끌려 해마다 해수욕객들이 몰려든다.
파도여!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는가? 통한의 아픔을, 어둠을 헤치며 끝없는 몸부림으로 바람과 함께 슬퍼했겠지. 함덕의 시원스런 바닷가를 뒤로 하고, 이른 아침 덕림사(주지 휴완 스님)를 찾았다. 마을 한 가운데 동산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쉽게‘동산절’이라고 불러왔다.
덕림사! 그 사찰의 역사를 기억에서 끄집어 내보자. 신홍연(申鴻然)和尙에 의해 1934년대 백양사(白羊寺)포교소가 창설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백양사 함덕포교당은 함덕과 인근의 대흘리 경계에 있는 속칭 외꼴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외꼴절’로 많이 불러진 사찰이었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1935년 9월18일 ‘함덕 포교소’가 인가되어 포교사는 이창석, 송종현 두 분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4‧3 전화 속에 신홍연 스님은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하고 함덕포교당 마저 전소됨에 따라 폐사됐다. 그 아픔을 이겨내, 1956년 해운 스님에 의해 재창되었으며, 1973년 해운 스님의 노력과 신도들의 불심으로 대지를 매입하고, 1977년 만덕화 보살과 함께 대웅전 불사를 이뤘으며, 1980년에 소조(흙불) 아미타불상을 봉안했다.
1990년에 해운스님이 열반한 후 1991년 지금의 휴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림사 주지 휴완스님

▶휴완 스님. 아침 일찍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주의 사찰들은 4.3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진상이 밝혀지고 있습니다만, 덕림사도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4‧3사건 발생 당시 신홍연 주지 스님은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으며, 이어서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신홍연  주지스님은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당시 곤궁했던 함덕의 경제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해 오신 스님이었다고 합니다.

▶아미타불에 대해서 여쭤 봐도 될까요?
▶예. 아미타불은 조선시대 외꼴절에 모셨던 소조(점토를 사용한 흙불)로 복장이 없는 것 갖지만 허리가 조금 굽은 가운데, 등 뒤에 개금을 새롭게 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요, 기회가 닿으면 문화재 가치에 대한 감정평가 받기를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문화재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역사성을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언젠가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온다고 봅니다. 관광적인 측면에서만 연계해서 볼 것이 아니라, 작은 것 같지만, 불상 한 개 한 개에 대해 연구하는 스님들도 많이 나와서 전문가 못지않게 공부도 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접근할 때 불교문화재는 발굴되고 새롭게 탄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스님께서는 사회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실천해오시고 계신데, 제주불교에 있어서 복지에 대한 시각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예. 사회복지부문에 인연을 맺은 지도 10여 년이 훨씬 넘었나 봅니다. 복지관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점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관심이 소홀하다는 게 아쉬움이라할까. 물질만이 복지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봉사활동도 참 좋은 지혜이며, 자비입니다.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주불교에 있어서도 종단차원을 넘어서 함께 고민하고 의지를 모아서 공익부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행단체들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덕림사에서는 정토회가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정토회원은 50여명이 봉사활동을 19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정토회 봉사활동의 핵심은 1寺 1善 운동을 펴오고 있습니다. 
삼업(몸.입.생각), 좋은 행동, 좋은 말, 좋은 생각을 베풀어나갈 때 사회는 한결 밝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착한 일로 공덕을 쌓도록 불심을 증장하려고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펴오고 있습니다. 관내 노인정 5군데에 달마다 점심공양을 비롯해서 독거노인들을 보살피고, 김장김치 봉사와  동짓날에는 쌀과 팥을 나눠드리는 봉사도 하고 있답니다. 봉사는 한 번 번쩍하고 뒤돌아서버린다면, 효과는커녕 정이 흐르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해나갈 때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봅니다.

휴완 스님이 대웅전에 모셔진 소조아미타불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가 속의 덕림사는 앞으로 사찰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예. 대웅전과 해탈문, 삼성각 등 중창불사를 하는데, 12년 동안 26명의 신도들과 함께 매달 적금을 부어 많은 자금을 마련하셨던 마음 힘든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원만하게 이루어졌기에 새롭게 단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정토회나 신행단체들이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봉사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힘써 나가려고 합니다. 사찰의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서 사찰 내에 음식공양간과 쉼터를 마련해서 공연과 전시 등 문화행사도 열고, 자비의 찻집과 같은 휴게실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나간다면,  포교활동과 함께 사찰격에 맞는 조건을 갖춰나감으로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스님의 생각과 신도들이 생각이 하나가 될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봉사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자급자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수익사업이 아닌 순수한 신행단체회원들이 주체가 되어 불심을 증장하는데, 힘써 나가려고 합니다.  

▶주지스님 오늘 좋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함덕리는 제주도가 지정한 국민 관광단지인 함덕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높은 동산 사찰에서 바라보면 에메랄드 빛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덕림사는 ‘제주불교 성지순례’ 코스에 포함되고 있는 가운데,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토종 잔디밭에 앉아 그냥 마음 편히 쉬고 싶지만,
다음 취재 길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탈문을 나오려는 순간 ‘청산’ 禪詩碑에 시선이 잠시 멈췄다. 청산은 말없이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로 시작되는 그 ‘청산’ 조선시대의 나옹선사의 선시를 마음에 되새기며 해탈문을 나섰다.  
 

김익수 대기자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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