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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꽃을 그리기 시작한 까닭정정진의 ‘길 위에서’ (24)

내가 날개를 감추고 사는 천사라고 누르는 이가 있다. 그는 세상 경험도 많고 지식과 지혜도 뛰어나다. 그 나이에 별 것을 다 알고 있고, 별 것을 다 기억하고 사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마음은 또 얼마나 착한지 늘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고 종교 말고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 그는 천주교신자이다. 하지만 불자인 나보다 스님들과의 교류도 꽤 있어서 좋은 차를 스님들로부터 선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가끔 스님께 받은 보이차라며 내게 권하기도 하니까.
그는 화가인데 천주교 신자답게 장미와 성모마리아도 그리지만 연꽃을 좋아해서 연꽃도 많이 그린다. 전시회에 출품할 정도로 나름 연꽃 그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불자인 걸 알고 어디 어디에 출품해서 호평을 받은 것이라며 내게 곧잘 보여준다. 정말 마음에 든다며 연꽃 작품을 사간 스님도 있다고 하니 잘 그리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가 평소에 교만하거나 자기 자랑을 하는 편이 아니어서 자기가 그린 다양한 연꽃 그림을 보여주며 “이거 어때요?” 하고 묻는 것이 크게 거슬리거나 밉지는 않다. 그런데 그녀의 연꽃은 내 마음을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참 예쁘네요!”
가끔 멘트를 바꾸어 줄 때도 있다.
“참 곱네요!”
“정말 잘 그렸네요!”
이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진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다.
그는 어쩌면 자랑하고 싶다기보다는 내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감동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그의 마음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더더욱 내게 자기가 그린 연꽃 그림과 직접 찍은 연꽃 사진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덕분에 나는 화두 하나가 생겼다.
왜일까? 왜 나는 연꽃을 잘 그리는 그 화가님의 연꽃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의 연꽃과 나의 연꽃은 완전히 다른 연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색연필을 꺼내어 들었다. 마침 반 강제로 내게 컬러링을 해 보라며 도반이 사준 수채화용 색연필이 한 달째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서랍 속에는 하얀 백지 봉투들이 있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완벽했다. 
나는 그냥 그렸다. 무슨 다른 생각이 있었겠는가? 오직 연꽃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과 그릴 뿐! 한 순간에 핀 연꽃들은 그대로 살아서 정말 가까운 도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혹시 내가 그림을 좀 그리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지 마시라. 나는 천재수준의 악필에다 그림이라고는 어렸을 때도 못 그렸고, 중학교 미술 시간에도 정말 괴롭게 그렸다. 물론 그 이후로 그려본 일도 없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마음이 모양을 만들어낸다고 하니 그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뿐이다. 신기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런 까닭으로 나는 요즘 연꽃을 그린다. 연습은 없다. 연습을 할 까닭도 없다.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내 마음이므로!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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