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부처다 /글 : 최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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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부처다 /글 : 최위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7.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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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4주년 기념 - 제5회 신행수기 공모 가작

올해 제5회 신행수기 공모에 모두 수상작 7편이 선정됐다. 이번 호에는 최위란 불자가 쓴 “우리 모두는 부처다”를 실었다. 각성 스님을 만나면서 불교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최위란 불자의 불교 입문과정이나 불교와의 인연이 돋보인다. <편집자주>

 

부처님이든 제불보살이든 원망하면서 살아왔다.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하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달동네에서 살면서 술에 찌들어 없는 살림살이를 매일 부수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증오스러웠다. 생기가 없는 휑한 눈으로 매일 힘없이 염주만 돌리며 “아이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만 하시는 할머니는 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불교를 미신적으로만 접근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리를 다 들어줄 터이니 열심히 관세음보살만 염송하면 만사형통이라고 하셨다. 
없는 살림에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들의 술값을 보태려고 열심히 폐물을 주워 팔고 그 돈을 허리춤에 꼬깃꼬깃 꿍쳐두었다가 아들의 외상값 독촉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막아주셨던 힘없었던 울 할머니,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 집을 언젠가는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심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리셨던 어머니는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기엔 너무 힘이 약한 존재셨다.  특히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병원 출입을 완강하게 거부하시며 어린 나를 억지로 무릎을 꿇게 하고 관세음보살님께 빌면 병이 다 호전될 것이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세상에 대한 원망과 가족을 사랑할 수 없는 한심한 자신에게 독을 품고 살았던 내가 부처님의 정법을 만났다. 
나는 20여 년을 중국에서 살아온 조선족 동포이다. 어찌보면 도망치듯 온 유학이었다. 불교에서 늘 말하는 지옥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나만큼 더한 지옥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원망을 하며 나는 악착같이 공부에만 집착했다.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출세를 해야만 힘을 얻어 이 지긋지긋한 수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10년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박사학위만 따서 대학교수가 되면 내 인생에도 쨍하고 해뜰날이 올 거라는 한줄기의 오아시스같은 희망을 품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푼 희망도 잠시, 비록 몸을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서적으로 내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정신분석상담을 받기에 이르렀다. 탈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원점에 와 있었다. 운명이라는 놈이 걸어오는 장난에 힘없이 쓰러질 내가 아니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힘을 주려고 무진장 노력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고 나는 급기야 자궁내막증식증에 걸려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척결되어갈 그 무렵, 나는 나의 스승이신 정각스님을 만났다. 이끌려갔던 사찰방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교 사찰에 간다는 생각보다 맛있는 힐링 음식을 한 끼 먹고 오고 공기 좋은 곳에서 쉬다고 오자고 제안했던 친구가 나를 부처님의 정법으로 인도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정각스님이 계시는 미륵사를 찾았다. 모든 것이 다 낯설었지만 불현듯 맹목적으로 관세음보살만 염송하면 된다고 하셨던 힘없는 울 할머니 모습이 떠오르며 나는 다시 부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도 잠시, 정갈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의 스님이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셨다. 정각스님과의 첫 만남의 순간이었다. 지금도 인연을 만났다는 것 외에는 첫 만남에서 내가 느꼈던 그 뭉클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분명 나는 이 스님을 오늘 처음 만났는데,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하신 이 분 앞에서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본 스님 앞에서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가족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살려달라는 애원이었다. 살고싶다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나는 마음속에 뭉쳐있던 응어리를 풀어냈다. 
스님께서는 나의 못난 고해성사를 경청해주셨다. 그리고 차디찬 내 손위에 당신의 따뜻한 손을 포개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디 그대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오”
“자네가 참회해야 할 것이 하나 있소. 가족과 세상에 대한 참회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참회지. 바로 그동안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자신의 영혼에 대한 참회를 해야 하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그 법문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오롯한 어떤 존재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나는 경험했다.
스님께서는 나에게 매일 아침 108배를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나는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스님의 가르침대로 매일 아침 108를 시작했다. 어찌보면 내가 할머니로부터 봐왔고 알고 있었던 불교는 진정한 불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렇다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그런 공명을 주신 스님의 말씀을 꼭 따라 해보고 싶은 신심이 생겨났다. 
“참회합니다. 내 영혼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부처님,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이 못난 딸이 어리석어 당신들의 영혼의 소중함을 못 알아 봤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소중하듯 우리 모두의 영혼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나는 자주 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 법문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머리 굴리지 않고 스승님이 주는 가르침 그대로 행해보려고 노력했다. 간절히 속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주 하나하나에 영혼을 실어 한 달에 한 번씩 3천 배에 도전했고 아침마다 108배를 시작하며 진심으로 참회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108배를 하려고 무릎을 꿇자 수도꼭지라고 터진 듯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속수무책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힘없이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우리 가족 모두의 영혼이 파아란색, 보라색 등 희망의 빛깔로 보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한 존재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옥에서만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 하면서 원망만 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이 내면을 보지 못하고 덧없는 것에만 집착해온 어리석은 중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 듯 우리 가족들에게 영혼의 서광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곳에 있었지만 구름에 가려져 찬란한 태양을 못봤을 뿐 아버지의 영혼도, 어머니의 영혼도, 울 할머니의 영혼도 반짝반짝 빛나는 태양의 모습과도 같은 존재였다. 
“스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은 늘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 어리석은 중생이 외부의 화려함에만 눈이 어두워 자신과 가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네. 모두가 깨어나면 수승한 법기들인데 자성불에 귀의하지 못하니 어찌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할 수 있겠나. 진정한 귀의는 자성불에 대한 귀의일세. 자네가 먼저 깨어나 가족들의 영혼을 깨워주는 명안존자가 되시게.”
정각스님의 가르침대로 외부세계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성불에 귀의해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티끌의 구함도 없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가족들을 사랑하고 안아주었다. 나는 틈만 나면 집에 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근기에 맞게 불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대로 된 불법을 만나지 못했을 뿐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시는 할머니께는 관세음보살 원력의 진정한 의미와 함께 진정으로 자성불에 귀의해야만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완전히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해 드렸고,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피해망상증에 시달리시는 어머니께는 무조건 사랑한다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알코올 중독자 취급을 한다며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셨던 아버지는 도저히 죄인의 모습으로 가족들을 등질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전문의사와의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셨고 현재 열심히 치료중이시다. 피해망상증에 시달리시던 어머니도 고향에 있는 동래사 사찰을 찾아 열심히 공양간 일을 거들어주고 계신다. 해뜰 날이 없이 음침한 그늘 속에 파묻혀 있던 우리 집이 부처님의 정법을 만나 생기가 감도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 역시도 한국에서 열심히 중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문번역과 통역 봉사를 하며 부처님의 가피를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이 세상에 부처님은 오로지 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처처에 부처 아니 계신 곳이 없었고 나는 매일매일 수많은 부처님을 만나고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생의 탈을 쓰고 나의 어리석은 미운을 열어주기 위한 제불보살의 화현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문학박사 공부를 하면서 나는 만해 한용운 스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문학계에서는 한용운 스님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님”에 대한 여러 차원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용운 스님의 “님”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진정으로 알 것 같다. 불립문자, 언어도단의 그 존재, 난 바도 없었고 멸한 바도 없는 오롯한 그 존재, 매일 만나지만 외면하고만 살았던 자성불에, 우리 모두의 자성불에 한용운 스님의 “님”을 얹어 바치련다.

<님>은...
잃어버린 자신도 아닌,
잃어버린 적도 없는 그 ‘님’인

‘나’라고 알고 지낸 ‘나’도 아닌,
자신인줄도 모르고 지낸 그 ‘님’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을 찾았습니다.
저의 그 ‘님’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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