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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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②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7.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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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木筆

톨레는 ‘고통체’로서의 에고에 대해 꼼꼼히 관찰함으로써 에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관계 속에서 에고의 작용,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에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상대가 누구이던 간에)과 교류할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할 만큼 충분히 깨어있고, 알아차린다면 만나는 상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자신의 말과 태도, 행동 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존재 대신 개념적인 마음 속 이미지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우리가 만든 개념적 이미지가 우리들이 창조해 낸 그 상대방에 대한 개념적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에 바탕을 둔 두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는 실제로는 마음이 만들어낸 네 개의 개념적 정체성들의 관계인 셈이며 그러기에 갈등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톨레는 그래서 우리 안에 불행이 있다면, 먼저 그것을 알아차리고 불행은 우리 자체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지 말고, “내 안에 불행이 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불행의 주요원인은 결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다. 그 생각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톨레는 불행이 되고 있는,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생각을 상황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상황은 언제나 중립적이며, 언제나 있는 그대로이다. 반대편에는 상황이나 사실이 있고, 이쪽에는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있다. 그래서 나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대신, 사실과 함께 머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 ‘알아차림’이 있다면, 생각하는 모든 생각들을 믿을 필요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것들은 오래된 생각일 뿐,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이 순간에 존재함’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오직 ‘현존(現存)’만이 우리 안의 무의식적인 과거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에고에 사로 잡혀 있으면, 더 많이 행동함으로써 언젠가는 충분한 행위를 축적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이 완전해지리라고 믿지만 그렇게는 될 수 없으며 오직 행위 속에 자신을 잃어버릴 뿐이라고 톨레는 말한다. 
그래서 톨레는 ‘삶의 완성’은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존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에 있다고 한다. 어머니, 남편, 아내, 젊은이, 노인, 연기하는 역할, 수행하는 기능은 무엇이든 인간차원에 속한다. 그것만으로는 진정으로 의미있는 충족된 관계나 삶을 위해서는 충분치 않다. 그때 그곳에 존재가 있다. 이것은 고요하게 깨어있는 의식 그 자체의 현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의식이 ‘본래의 나’이다. 인간은 형상이며, 존재는 형상을 초월해 있다.인간과 존재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모든 아이 안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형상 차원뿐 아니라 존재 차원에서도 부모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누군가 당신의 ‘존재’를 알아볼 때, 그 알아봄이 두 사람을 통해 이 세상 속에 더 많은 ‘존재’의 차원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인 것이다.
나는 요즈음 ‘자살예방상담전화’에서 모르는 이들의 전화상담을 한다. 그리고 가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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