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 새천년에 내게로 왔던 푸른 소리바람 (글:권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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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새천년에 내게로 왔던 푸른 소리바람 (글:권미숙)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7.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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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는 온 몸으로 불울 지피어 아름아름 안개꽃을 퍼 올리고, 그 꽃 속에 나를 가두어 놓고 부처님은 보라 신다. 네가 누군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뱃고동소리는 붕붕. 안개꽃으로 천지 분간이 안 되던 날 나는 나를 보았다. 
남편에 대한 불신으로 일어난 화를 감당 할 길이 없어 부업으로 살림을 일으켜보자던 바느질일도 밀쳐두고 마흔에 낳은 늦둥이는 어린이집에 넣어 둔 채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나는 매일 별도봉정상과 산책길 중간 언덕에 앉아 있었다.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도 있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이혼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죽든지 아니면 내 몸이 우주 바깥으로 펑 튕겨 나가서 산산 조각이 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바다가 내어 준 또 다른 희뿌연 안개꽃 바다에 앉아 지나 온 날들을 돌아다보았다. 목표나 의지가 없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름 날 뭉게구름처럼 그냥 정처 없이 밀려 다녔던 것이다. 그 순간 0.1초도 안되게 스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효덕스님께서 초파일 날 육지 큰스님 초청을 못 하시면 사자후에 앉으셔서 직접 설 하셨던 그 법문.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라는 말은 아닐 테고 세상살이가 힘드니 홀로서기를 하라는 말씀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던 법문이, 오늘 이 바다가 내어 준 안개꽃 속에서 부처님은 모래알 같은 나를 보게 하시고 찰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깨침으로 주셨다. 
그래 나를 갈고 닦아서 세를 만들어서 드러내자. 그럼 무엇으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꿈은 프리마돈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성악으로는 천지를 유유자적 할 수 있겠다 생각 했었던 적이 있었지. 너무 멀리 왔다. 할 수 있는 성악은 (진소리) 판소리성악 뿐이었다. 남은 평생을 소리로 살리라 생각하고 제원아파트앞에서 판소리자료를 훑어보니 박동진선생님 김소희선생님 조상현선생님 안숙선선생님 네 분께서 창극으로 엮어진 “판소리춘향전”이 있었다. 그것도 CD가 아닌 네 개의 테이프로 엮어져 있었다. 일터로 돌아와 틀어 보았다. 초장 얼마 지나지 않아“사랑가”가 나왔다. 눈물을 쏟아 낸다.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사랑가”만 들으면 왜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렸던지 모른다. 소리는 늘 사랑가에서 멈춰 섰다. 광주 예총 시청 민예총으로 전화를 던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컴맹이었다. 불같이 화가 난 가슴에 뭘 알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광주로 소리길 을 떠났고, 광주서 5년 서울서 5년 마지막 춘향가보유자 신영희선생님 문하에서 이수를 목표로 부처님께서 주신 푸른 바람을 싣고 내 배는 아직도 항해중이다. 새천년에 소리를 시작하라고 뒤집혔던 가슴이 부처님께서 제게 주신 푸른 바람이 되어 서시가 되어 실어 봅니다.

 

바다무지개
누가 무지개가 
하늘에서만 뜬다고 하였는가?
바다 밑에는
얼마나 큰 불가마가 있어
파도는 저토록 
펄펄 끓어 넘치는가?

바위 위에
그 바위처럼 웅크리고 앉아
내 속 같은 저 바다를 본다.

파도는 남의 앞섶을
마음대로 열었다 젖혔다
펄쩍펄쩍
치오르고 넘어지며
끝없는 키 재기로 몸부림쳐

아! 오색찬란한 
바다 위 산 무지개를 피운다.
해 지도록 피운다.

누가 하늘에서만 무지개가 뜬다고 하였는가?
내 안에도
어여쁜 불가마 하나 있으니
이 땅위에
저 파도 같은
소리 한소끔 끓여놓고 가면 어떨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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