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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기 - 돈의 두 얼굴글 허평

태국에서 네팔을 가려고 여행사에 들러 싸구려 표가 있는지를 물었다. 한 마디로 ‘노’다. ‘경비 좀 아껴볼까 했는데 틀렸구나.’하고 잠시 낙담하고 있는 차에 “싼 티켓은 없고 아주 싼 티켓은 있다”고 했다. 몇 초 사이를 두고 실망시켰다가 금세 기분을 완전 좋게 만들어버리는 여행사 직원의 기지가 놀라웠다. 
완전 기분 좋게 만들어버린 티켓은 태국에서 네팔로 직행하는 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인 방글라데시로 갔다가 그곳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목적지 네팔로 가는 국적 방글라데시 행 비행기다. 
어찌됐든 싼 티켓이 아니라 아주 싼 티켓으로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 대합실에 몇 시간을 붙들어 두었다가 네팔로 가는 여행자들에게 동그란 딱지 하나씩을 주었다. 딱지를 받고는 몇 팀으로 나뉘어서 숙소로 향했다. 
시내 같기도 하고 변두리 같기도 한 곳에 내려서 숙소에 들었다. 내 방 짝꿍은 키 크고 코 큰 사람이다. 이십대 중반을 약간 지나 보이는 인상이 괜찮은 사람이다. 공짜 방에 공짜 밥인데 코 크고 키 크면 어떻고 인상이 좀 어떠면 어떠랴 싶었다. 
저녁밥 시간이라 짐을 내려놓고 식당에 가보니 뷔페식인데 찬이 좋을 리 없지만 배를 채우는데는 충분했다. 양껏 채우고 방에 들와서는 양말을 빨어 펴놓고 대합실에서 장시간 기다리느라 지친 몸이라 침상에 털썩 앉았다. 앉자마자 꺽다리 짝꿍이 약간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털어놓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말을 하면서 감정을 삭이려 애쓰는 모습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공감하는 표정으로 들어보니, 결혼을 약속한 아가씨와 함께 여행을 하는데 “먹는 것도 좀 더 고급으로, 숙소도 좀 더 고급으로, 교통편도 좀 더 고급으로, 이것저것 돈으로 밀어붙이는 통해 화가 나서 태국에서 헤어지자하고는 혼자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의 계산법으로는 애인이라고 해서 애인 몫까지 부담하지는 않는다. 설령 부담해준다고 해도 생각이 복잡한 사람이라면 쉽게 응하지도 않을 것이다. 
떠나는 날 아가씨는 울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여기로 왔다고 했다. 내가 잘못 들었는지 아무튼 기분이 많이 상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아가씨는 사는 곳에서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 여행 온 김에 팍팍 기분 한 번 내 보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받아 주지 못하고 혼자 왔다니 조금은 애석하게 됐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돈 쓰는 재미가 붙으면 망가지게 되어있다. 
돈을 써도 돈의 두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필요에 의해 쓸 뿐, 돈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젊은이는 돈의 두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아가씨에게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다보면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변한다. 잘 먹게 되면 잘 먹고 아니면 대충 해결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면 편안하게 지내고, 아니면 극기체험 한 번 해본다 생각하고 적응해 가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돈을 쓰는 것이지, 돈을 쓰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여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돈 쓰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일생동안 돈에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다. 
엄청난 돈을 축척하고 있어도 그 꼴이다.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된 삶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돈 싫다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돈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생을 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돈이 있든 없든, 아무튼 그 아가씨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이 멋진 젊은이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없지 않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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