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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일까
유 현

변화무상한 세상살이에 현대인들은 대부분 몸과 마음이 힘들고 고통 받기 십상이다. 이럴 때 부처님 말씀은 보약과 같다.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들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겪는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적인 괴로움이라면,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불득고求不得苦의 세 가지 괴로움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는 상황에 따라 겪는 심리적, 정신적 괴로움이다. 
군복무 3년을 마치고 복학 후 법과로 전과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서너 번에 그치지 않고 아홉 번이나 시험을 본 것은 원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시도했기 때문에 뼈저리게 겪어야 했던 시험지옥의 고통이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다多겁劫생生을 쌓아 온 내 업으로 내가 짓고 그 과보를 내가 경험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나에겐 ‘괴로움은 스스로 짓는다.’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변호사로서 2006년 공직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을 때, 유권자의 표심을 탓하면서 ‘남이 지은 괴로움을 내가 경험하게 된다.’라고 생각해 보았다.
업과 윤회의 주체에 대한 의문이 암호가 풀리듯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한 것은 「인연 상윳따」(S12) 경전을 읽고 나서다. 『청정도론』을 처음 접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행위 하는 자도 없고 과보를 경험하는 자도 없다. 오로지 법들이 일어날 뿐이다.”라는 경구警句도 ‘내 탓’, ‘남 탓’이라는 개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연기를 직관하라는 명령이라는 것을. 
“연기를 보는 자, 그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 그는 부처를 본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서 공부한 덕분으로 나에겐 참으로 괴로움을 알고 보는 법안法眼이 생겨났다. 
인간적 삶의 다양한 모습과 현상이 인과의 사슬임을 알면서 남을 탓하면서 들끓기보다 지금·여기 일어나는 물심物心 현상의 원인과 조건을 살펴본다.
불교는 무위법인 열반을 제외한 일체가 괴로움임을 천명한다.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부처님의 첫 가르침은 ‘초전법륜경’(S56:11)에 실려 있다.  존재로서의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집착[五取蘊]이 괴로움이란 이유는 두 가지. 오취온의 고苦는 오온 자체가 조건에 의해 생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고, 그 오온에 대한 집착 역시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불교가 괴로움을 말하기 때문에 염세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만일 불교가 전적으로 괴로움만을 말한다면 당연히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가 이처럼 괴로움을 강조하는 이유는 괴로움이 소멸된 경지인 열반의 실현을 너무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괴로움임에 사무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해탈, 열반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사회는 고苦의 축약판이다. 지구 온난화의 환경문제, 이념· 지역· 세대· 성 갈등에다 다문화 갈등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일체의 고가 골고루 갖춰져 있다. 남북의 분열과 대립까지 보태면 고통의 연속이다. 
이 세상을 괴로움으로 이해하려면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사회 현상은 불교공부를 하는 데에 대단히 적합한 토양이다. 나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바로 우리 후손들이 고스란히 그 과보를 받게 될 뿐이다. 업에서 업으로부터 과보가 생길 뿐 조물주도 없고 천신도 끼어들 수가 없음이랴.   
팔정도八正道를 개발하고 완성함으로써 고귀한 정신문화를 창조하여 괴로움이 소멸한 자리에 행복의 씨앗이 움트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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