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처마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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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처마 밑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7.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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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25)

장마철이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기를 며칠 째! 아들과 나는 창 밖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비는 쏟아져도 방수도 방음도 잘 되어 있으니 집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때였다. 맑은 날이면 우리 집 유리창 난간에 앉아서 놀던 아기주먹만한 새들이 비를 맞으며 건물 주위를 빙빙 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저 작은 몸 하나 피할 곳이 없어 그런가 싶어 아들과 나는 동시에 안타까운 눈짓을 주고받았다.
 창 너머로 밖을 보니 건물들이 모두 반듯하고 매끈하다. 둘레둘레 서 있는 집이며 빌딩들도 멋지게 차려입은 서양신사들 같다. 하지만 한옥의 처마 같은 여유 공간이 없다. 아쉽다.
 문득 처마가 그리운 것은 유년의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심히 잡아서 쭉 늘려 놓은 듯한 자투리 공간이지만 거기에는 뭇 생명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 공간에서 누군가 잠시 쉬어가거나 비바람을 피해 간다고 해도 주인이 딱히 생색을 낼만한 일도 아니고, 신세진 사람도 미안해할 정도가 아닌 그야말로 빈 공간이 처마 밑이다. 제비더러 집을 지으라고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제비가 집을 짓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처마는 마음도 비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그 소리는 그야말로 무심의 경지와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마당 여기저기 퐁퐁 뚫리는 구멍도, 무수한 동그라미를 만들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도 선적인 풍경이었다. 이렇게 처마는 주는 것이 많았다. 준다는 생각도 없이 주는 것이 많은 공간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보살님은 다포며 합장주를 살 때 꼭 몇 개씩 더 산다. 선물 줄 거냐고 하면 “선물이라니요?” 하며 손사래를 친다. 선물을 준다고 하면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몇 개 더 사 두었다가 기회를 보아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이거 쓰세요! 제가 딱 한번 쓴 건데 저는 집에 하나 더 있어서요.” 하면서 준다고 한다. 진짜로 집에 똑같은 것이 있으니 망설일 까닭이 없고, 선물이 아니라 쓰던 거라고 하면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니 참 좋다고 한다. 걸림 없이 베풀었으니 걸림 없이 흐뭇할 것 같다. 부처님 지혜로 베푸는 일에는 무게가 없다. 처마 밑 빈 공간처럼.
 “아들아, 혹시 네가 집을 지을 기회가 생긴다면 꼭 처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바람이라도 쉬어가게!” 
 “유지를 잘 받들겠습니다.” 뭐 그런 말은 없었지만 아들은 시익 웃었다. 그 웃음에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걸 보니 머지않아 처마가 있는 집이 여기 저기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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