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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궁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

참선은 인생의 생사일대사를 철증徹證하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언어와 문자를 내세울 것도 없이 누구나가 실참실구實參實究하여 상주삼매常住三昧의 경지에 머물러서 원융무애한 대진리의 도를 냉난자지冷暖自知하도록 교양하는 것이다. 
선을 참구함으로써 정신단련과 품성도야가 저절로 이룩되어, 여기서 안전한 국가가 건설되고 평화로운 세계가 출현케 된다면, 이것이 바로 정불국토신精佛國土神이 되는 것이다. 소위 일심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다신이 청정하고 여시내지 시방중생의 원각이 청정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에나 그저, 돈만 있으면 된다고 착각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돈, 물질 위주가 될수록 도는 멀어지고, 정신의 세계, 혼의 세계는 소외되어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해지기 때문에 전도몽상 아닌 올바른 꿈을 꿀 수는 없는 것이다. 소위 “야유몽자夜有夢者는 불입不入이요, 구무설자口無舌者는 당주當主라”한 것이니 전도몽상하지 말고 말없이 착실하게 공부하라는 선실명禪室銘이다. 아무리 고묘한 이론이나 정밀한 연구라 하더라도 약방문이 바로 약은 아닌 것과 같이 선은 구태여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여기 한국선원 일과의 편모를 소개하라 하니 선수행의 실제공부하는 일단을 말해 보고자 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의 덕성을 함양하는 데 적절한 방법은 좌선공부보다 더 한 것이 없다. 좌선이라 하면 총림선원에 입방해서 대중이 합동으로 수선하는 방법과 선원이 아니라도 개인적으로 자기의 조용한 방에 앉아서 실내를 정리해 놓고 일주향을 피우고 정좌해 보는 것이다. 그저 망연히 앉아 있기만 하면, 망상번뇌가 분비하게 일어나서 견디기 어려우니까 화두공안을 결택해서 이것을 잡아들고,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전신의 염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전자의 경우은 한국불교 선원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후자는 흔히 남방불교에서 수식관이나 수화관 같은 관행의 선을 닦고 있기도 하다. 
총림선원에서는 새벽 세 시 정각에 선판을 울려 기상함으로부터, 냉수에 세면하고, 예불 드린 다음, 입선죽비 소리에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결가부좌하고 손은 법계정인을 결하고 귀와 어깨가 가지런하게 코끝과 배꼽이 수직이 되게 하고 어금니를 꼭 다물고, 눈을 반개하여 3척 앞을 보고 움직이지 아니하면, 소위 안정이 심정하고, 심정이 신정하여 좌선하는 모습이 된다. 50분간 앉고 10분 간 경행해서 몸과 다리를 풀어 주며, 여름철에는 2시간, 겨울철에는 3시간 끝에 새벽 정진 제일시를 방선한다. 
아침 식사는 원래 죽을 먹는다. 다음에 일제히 비를 들고, 도량 청소에 나아간다. 그 뒤 운집목탁 소리에 모여, 제2시 입선에 들어가면, 역시 3시간 또는 2시간 동안 섭심좌선하고는 이시불공에 참배하고 나서 바로 오공에 들게 된다. 식후에는 다茶를 들며, 더러는 선담이 오고 가기도 하고, 오후 일시까지는 자유시간으로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즐기고는 다시 제삼시 좌선시간에 들어가 오전과 같이 정진을 한다. 
방선 후, 저녁 식사 이전에 한두 시간씩 김메기, 풀베기 같은 울력 또는 보청이라 한다. 한사람도 대중울력에서 빠지는 일은 없다. “대중울력에는 죽은 송장도 일어난다”는 말이 있으니 이른바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라는 말씀은 너무나 유명하다. 
저녁 식사는 본래 없는 것이지만 병약자를 위해서 간략하게 마련되기 때문에 약석이라 부른다. 저녁 예불 후 제사시 입선은 새벽시간과 같이 2~3시간으로 보통이 아홉 시에 대방참의 죽비를 울리고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나며 취침에 들게 된다. 
이상과 같이 일일사분의 좌선시간이 10~12시간이 되며, 수면은 4~6시간을 취하고, 삼시공양은 조죽, 오재, 약석으로 순소식주의이다. 개개인의 빨래 같은 것은 반월마다(그믐 날, 보름 날), 삭발은 목요일로 되어 있고, 그 밖에 더 잔 볼일은 방선 시간의 여가선용으로 해야 되며, 포살일, 법회일에는 제책일이라 하여 이날 낮 시간은 지킬 수 없으므로 유익한 이야기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소한 병이 나면 간병실에서 치료하지만 갑작스런 큰 병이 아닌 바에는 결제기간 중 외출은 아주 금지되어 있고, 구순안거를 하루같이 일념정진하는 것이다.
무릇 좌선의 생명은 화두, 즉 공안을 거각하는데 있는 것이니, 화두란 말은 언어 이전의 소식, 즉 이심전심의 묘리를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산회상에서 세존이 염화시중하신 일 같은 것은 선종에 제일 공안이 된다. ‘세존은 어째서 꽃을 잡아들고 보이셨을까? 하고 일심집부해서 일체의 분별심을 붙이지 말고, 전신으로 생각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 하나로 번뇌를 해탈해서 보리를 획득하는 불조의 공도가 되고 방안이 되기 때문에 공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좌선공부에서 첫째 주의할 점은 두뇌로 생각을 모으지 말고 전신의 힘을 아랫배에다 두어 척양골을 이조의 철주와 같이 뻗쳐 세우고 하복부를 태산과 같이 든든하게 내밀고서, 여기에다 화두를 잡아 붙혀 의단을 만들어 공부를 착실하게 해 나가면 가슴은 저절로 호연해져서 걸림이 없게 되고 대담해지고 여유가 생기고, 성급해서 참을성 없던 자도 유유자적한 취미가 생기게 되고, 절제근후 하는 덕성이 키워지는 등 광대하고 심원한 효능은 각자의 노력을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제심일처 하면 무사불판이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맛있는 산해진미의 음식을 보면 타액이 분비함을 느끼고, 수화폐월, 꽃이 부끄러워하고 달이 숨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지닌) 미인을 만나면 연정이 일어나고, 부귀영화한 이를 보면 선망의 눈길을 보내게 되고, 부운 같은 명예를 얻으면 갑자기 하늘에라도 오른 느낌에 우쭐하는 등 무상정변하는 인간처세의 일희일비, 일득일실이 모두 심적 활동력을 낭비하는 것뿐이다. 
선은 이러한 마음을 안정시켜 그 중심을 향해 적집해서 심력을 허비하지 않고 축적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신골수에 충새했을 때, 천파만랑에도 휘둘리지 않고 태연자약하여 동하지 아니하며, 임운무공용으로 12시를 사득한다는 시공초월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안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선방생활이 어떻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선방에서 공연히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저 도덕적, 정신적 무한한 능력을 개발시키고 또 우주의 대진리와 인간의 근본생명체인 진아의 발견과 완성을 위하여 진실로 자기 존재의 신비를 철견할 때까지 이와 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수련하며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말로 표현되어져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말과 같이 우리는 구태여 이 도리가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과 학문, 예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또 벗어남이 없다는 등,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어 적당한 빛을 보아 평가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알아주거나 몰라주거나 간에 이 도리는 생명의 근본이요 바탕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궁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너무나 밖을 향해서 치달리는 현대사상과 속없는 현실생활의 모든 경향 속에서 실을 찾는 작업은 선수행의 의의를 조금씩 미식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 이 글을 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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