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 나를 살린 세 번의 만남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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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나를 살린 세 번의 만남 (김정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7.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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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4주년 기념 - 제5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작

올해 제5회 신행수기 공모에 모두 수상작 7편이 선정됐다. 이번 호에는 김정애 불자가 쓴 “나를 살린 세 번의 만남”을 실었다.  <편집자주>

 

 

봄 소풍을 기다리다 잠을 설치고 집을 나서는 아이처럼 여느 때보다 분주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은 불기2563년 5월12일 석가탄신일. 부처님이 광명을 놓았을까? 오월의 찬란한 햇살을 받은 마당 한 켠 모란 작약은 그 빛깔이 오묘하게 깊고 향기롭다.
하늘도 땅도 갖가지 꽃도 온갖 새도 석탄일을 경배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듯 허공 속에 은은히 퍼지는 아카시아 꽃향과 참새의 지저귐까지 삼라만상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자 분주히 몰려드는 것만 같다.
내가 부처님 법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시절 윤리시간이었을 게다.
세계 인류의 4대성인 중 한 사람인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나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손에 양육 되어져 16세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두었다. 왕족으로서 유복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삶의 허무함과 고통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며, 고민을 하다 29세에 출가를 하게 된다. 진리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6년간의 고행 끝에 인간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깨달음을 얻은 사람 즉 부처를 이루게 된다.
그 수업을 들으며 인간은 누구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난생 처음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경외심과 공경심이 생겼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번뇌와 고민이 내 사춘기 시절 최대의 화두가 되었고, 어쩌면 그때 마음속에 겨자씨만한 불심을 심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덧 일상의 삶이 바쁘고, 돌아서면 잊고 놓쳐버리는 고질병 같은 약한 근기로 인해 먹고 사는 일에 쫒기 듯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부처님의 이름자조차 까맣게 잊고 살게 되었다. 화물운송 사업을 하던 남편의 빚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도록 눈치 채지 못할 때까지…….
마흔 아홉에 홀로되신 시어머니께서 어렵게 지켜오다 물려주신 과수원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감귤농사도 함께 지어 왔었는데 결국 빚을 갚기 위해 처분 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만 봐도 미웠고 숨소리만 들어도 원망스러웠다. 의논 한마디 없이 빚을 키운 남편에 대한 신뢰와 믿음도 흔들렸다. 그렇게 모든 책임과 가정의 위기를 남편 탓으로만 떠 넘기며 내가 소중하다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려 할 때 지인 불자님으로부터 새벽마다 눈 뜨면 바로 남편을 향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3배를 하라는 설득을 받았다.
처음엔 도무지 수긍할 수 없어 반발심을 내며 거부했지만 모든 잘못은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자신으로부터 지어졌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3배의 기도를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와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된 기도, 너무 어색하고 진심이 들어있지도 않은 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났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오그라든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안개로 가려졌던 길 위에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헤매다 서서히 그 안개가 걷히며 길을 드러내듯 초라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마주 보았고 비로소 나의 잘못들이 하나씩 보여지기 시작했다.
재산을 잃은 분노 
남편을 향한 원망 
그것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그러나 웃음을 잃어버린 집안의 분위기는 나로부터 시작된 나의 책임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눈물은 울음이 되었고, 꼬였던 속을 시원하게 씻어준 울음은 나를 다시 불러주는 온화하고 따뜻한 부처님의 음성이며, 두 번째 만난 부처님 법이었다.
내 아들과 딸의 아빠가 되어줘서 고마웠고 아이들을 아껴주는 남편의 선한 눈빛이 고마웠고 부족하고 고집 센 나를 아내로 두고 살아줘서 고마웠고 잃은 게 건강이 아닌 재물이어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그냥, 지금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참회로 시작한 기도는 어느덧 감사의 기도로 바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 마음을 바꿔 먹으니 내 안의 모습을 마주할 용기와 함께 자신감도 생겼다. 감사한 이유를 찾는 게 하루 일상이 되었고 하루 3배의 기도는 어느덧 108배로 이어졌다.
등 줄기와 온 얼굴을 적시는 땀방울에 부질없는 생각들이 씻겨나가듯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생각도 맑아지며 모든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 벅찬 감동으로 생활에 활기를 찾게 되었고 잠을 못 이루어 뒤척이던 잠자리가 편해지며 나를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낯빛이  달라졌다는 인사도 종종 받았다.
어릴 적부터 탁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가족과 엄마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며 고생한 아들은 지금까지도 내겐 가장 아픈 손가락이지만 고교졸업 무렵 아들의 진로를 앞두고 실업팀을 꾸린 모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합격여부를 기다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뜨면 잠들기 전까지 부처님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그 만의 방법으로 아들을 위한 발걸음과 수고를 다 해 줄 때, 한 가지 같은 간절한 목적 앞에서 애 와 성을 다하던 그때 남편과 나는 더할 수 없는 인생의 동지를 만난 듯 의리도 또 다른 사랑의 참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딸아이의 잦은 병치레를 치르면서도 습관처럼 부처님의 명호를 외고 어려울수록 감사의 기도를 하다보면 없었던 힘도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덕분이었을까? 지금까지는 애들 모두 건강하게 원하는 직업과 학업을 이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나의 작은 믿음의 깊이가 다져질 때 쯤 친한 친구로부터 속 썩이는 남편과 이혼을 하려 하니 이혼서류에 증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친구의 사정을 충분히 듣고 이해해도 이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소신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기도를 비유하면서 설득했고 부탁을 거절하는 나에게 적잖은 섭섭함을 표했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알콩 달콩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인연을 지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요즘은 세 번째로 만난 부처님 법이 있어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0여년 간 마을의 부녀회 활동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알게 된 이웃에 관심과 사람과의 인연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재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같은 회원 간의 소통,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외로운 마을 어르신들과의 아픈 공감 한 부모 자녀 및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의 나눔 행사 등 봉사라는 턱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어줍게 다가섰지만 그들이 사는 모습은 늘 최선이었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게 비춰지는 걸 보며 그들에게서 더 큰 봉사를 받고 돌아오는 느낌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거듭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소중한 인연이며 여러 가지 가지의 부처님의 모습으로 화현 하신 인연이라면 더 이상 내겐 세상에 부처 아닌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이번 초파일에는 법화경 사경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 소중한 인연이 있다.
어쩌면 내가 베푼 것도 없는데 자꾸 받고만 있어 인연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루하루 감사히 시작하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초발심자이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읽으며 쓰는 동안 감동과 눈물은 계속될 것이며 기도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먼저 살리는 유일한 실천이란 걸 나 자신이 먼저 편안해지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겪게 된 만큼 뭐든 쉽게 잊고 살아가는 약한 근기인 나의 고질병마저도 이겨내는 길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저마다의 소망과 정성을 갖고 모여드는 많은 불자님들의 형형한 눈빛과, 촛불로 밝힌 연등과, 서녘으로 떨어지는 노을이 함께 어우러지는 삼광사에서 초파일 하루해가 넘어가려 한다.
아카시아 꽃 향기 온 누리에 가득 번지고 말없이 피고 지는 들꽃이지만 부처님 전 가장 향기로운 공양을 올리듯 내 마음이 가장 아프고 약했을 때 눈물로 읽었던 게송을 읊으며 글을 마친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위없이 깊고 깊어 미묘한 묘법,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워라.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받아 지니오니,
여래의 진실한뜻 알기를 원하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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