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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 만다라를 그리다! (렴순자)

사랑해서 결혼하고 살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면서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하는데 나의 인생 궤적은 일반적이지만은 않았다. 스물 몇 살 꽃다운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나름 헌신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사람만 좋으면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지만 남편의 아이도 내 손으로 정말 애지중지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고 시부모님들도 잘 모시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참고 사는 게 능사라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모습으로 10여 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해 갔다. 그러던 나의 삶에 더 참을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 건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폭언을 일삼고 비뚤어지는 삶을 살면서 부터였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엄마가 되어서 아이 하나 제대로 교육을 못하고 저러고 있다며 가끔씩 술을 마시고 “제 친엄마의 빈자리가 큰 거지.” 하면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 몸의 기운이 척결되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순간에 억울함이 확 밀려왔다. 내 청춘과 세포 곳곳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정말 애쓰면서 내 손으로 남편과 아들에게 정성을 쏟아왔다. 거기에 건축공사장에서 추락사고를 당해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 인대가 끊어져 여럿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있는 시아버지 간호까지 헌신적으로 해왔던 내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느낌이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내가 얼마나 헌신하면서 살아왔는데…….
가족들을 위해 나를 버리고 내가 없는 삶을 살아왔던 지난날이 원통했다. 나는 이 결혼을 하기 위해 친정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까지 저지르면서 남편과의 결혼을 강행했다. 오직 사랑한다는 명분 하나로…….
하지만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이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가족에만 매달려 헌신하면서 살아왔기에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었고 그때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머리를 질끈 뒤로 묶은 영락없는 아줌마의 모습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불자가 되었다. 그때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나마 나는 학창시절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바람에 전공을 살릴 기회가 없었지만 기회만 있다면 꼭 펼치고 싶은 꿈은 그래도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속 가장자리에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꼬깃꼬깃 처박아 두었던 내 열정의 씨앗을 겨우 꺼내어 미술이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어느 날 인사동 미술전을 관람하는데 유달리 눈에 띄었던 그림이 내 마음에 확 들어왔다. 무우수불화아카데미에서 진행한 불화전이었는데 그 곳에서 만났던 형형색색의 만다라 불화 그림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온 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불화를 그리기 시작하며 부처님의 정법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의 불화스승이자 인생의 멘토인 원문스님께서는 불화를 그릴 때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이 아닌 내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 무조건 마음을 정화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셨다. 한 땀 한 땀 서두르지 않고 그림에 내 마음을 덧칠했다. 스님께서는 만다라 그리기를 마음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한편 절수행과 금강경 독송을 권해주셨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에게 진심으로 참회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림을 배우는 것까지야 좋은데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박살 낸 남편에 대한 참회를 하라는 말씀에 거부반응이 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인간을 위한 참회를 해야 한단 말인가? 친부모 이상으로 애지중지 좋은 것만 해줘가며 키워온 아들인데 그 녀석한테서 폭언까지 들어가며 살아왔던 내 인생이 너무 애달프고 억울한데 왜 아들을 위한 참회 기도를 해야 한단 말인가? 마음으로 진정 그 말씀이 와 닿지 않았다. 스님께서는 그래도 일체 생각을 다 내려놓고 한번 진심으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셨다. 우선 스님께서 그리 권장해 주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 한 번 시도해보려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내 인생에 뭔가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나간다면 나는 영원히 부처님의 가피를 받지 못하고 그런대로 부정적인 정서들로 가득 찬 삶만 살 것 같다는 생각에 금강경을 독송하고 그 모든 공덕을 남편과 아들에게 회향하는 기도를 병행해나갔다. 
그렇게 불화 그리기와 금강경 독송을 시작한 지 2년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마음이 들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스쳐 지나갔다. 결국 나는 아상이 하늘을 찌르는 여인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심으로 남편에 대한 참회를 하게 되었다. 밥 먹듯이 입에 달고 살았던 “내가 애 딸린 사람이랑 살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는데 당신은 이것도 못해”하고 곱씹었던 말들이 남편에게는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다가갔고 남편의 숨통을 옥죄는 비수가 되었을까? 그리고 아들도 자연스럽게 꾸짖을 땐 꾸짖고 진심으로 안아줄 때면 안아주고 그렇게 키우고 흘러가면 되었었던데 나는 혹여나 계모라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괜한 오해라도 살까봐 특별히 힘을 주어 과하게 키웠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과연 내가 순간순간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대했던가 참회의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만 노력하고 희생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남편과 아들은 내가 쏴대는 무형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늘 도망가고 싶었을 심정이었다는 것이 공감으로 다가왔다. 금강경에서 나오는 바라지 않고 마음으로 베푸는 “무주상보시”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지난날들이 진심으로 참회되었다.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준다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에 좋아 보이는 걸 해주면서 당신들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갈등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동안 상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했음을 알아차리게 되니 섭섭함도 미움도 원망도 눈 녹듯이 싹 사라졌다.
금강경 독송과 기도를 하는 한편 나는 진심으로 내 만다라 화폭에 참회와 참나에서 비롯된 진심을 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만다라 그림이 완성되면서 더불어 내 인생의 만다라가 완성되어가는 가피를 나는 몸소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멘토인 원문스님 사찰에 가면 커다란 만다라 그림이 있다. 스님께서 구상하시는 만다라(불국토)가 그 안에 다 담겨져 있다고 하셨다. 만다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많은 불보살과 아라한들 외 여러 요소들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부처님 주변에 제각기 고유의 모습을 하고 자리하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그 만다라 그림에서 나 자신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내가 만다라 그림 속에? 만다라를 구성하는 아라한과 불보살들은 이른바 지혜를 구족한 고상한 존재들일게 분명하다는 생각에....‘나’는 이리 작디작고 미소한 존재인데 어찌 만다라 속에 들어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 나 자신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수성, 금성, 토성, 목성 등 여러 행성들처럼 태양주변에 굳게 뭉치기만 하면 자연스레 공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었다. 불법에 귀의하면 가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던 막연한 생각이 사라졌다. 불현듯 우주의 중심은 태양도 아니요 그 무엇도 아닌, 각자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기에 태양은 태양대로 존재하고 공전은 공전대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선 중심이 없지만 각자가 다 중심이다. 만다라도 마찬가지. 만다라는 불성을 담는 그릇일 뿐.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만다라의 주불(主佛)이라고 느껴졌다. 자성불이 곧 만다라이거늘. 그러고 보면 나에게 진정한 가피를 내려준 존재들은 우리 가족이었다. 미워할 것도 용서하고 말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 스스로 지어놓은 상에 갇혀 이들의 소중함을 몰라봤다.
나는 진심으로 참회하고 뉘우쳤다. 지금 우리 가족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바뀌니 아들이고 남편이고 바뀌었다. 바뀔 것도 없이 내가 몰랐을 뿐, 그들은 원래 수승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나는 오늘도 만다라를 그린다. 진정한 만다라가 그려지며 원만을 이루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멋진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우주 최강의 화가로 거듭나고 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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