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김 광 협 (1941 ~ 1993)
눈 내리는 밤에만 피는 꽃
비바람 울다 간 뒤 뜨락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립니다.
바다가 짓까불다 간 사이 뜨락에
가이 없이 눈이 내립니다.
눈 내리는 밤에만 눈 뜨는 수선화
수선화 포기마다 하이얗게
눈같이 하이얗게 수선화가 핍니다.
김광협 시인은 서귀포 호근동 출신이다. 김광협은 196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토속적 서정과 제주어로 제주를 노래한 시들을 많이 썼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몇 년 전부터 시 전문지 ‘발견’이 김광협 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어 김 시인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호근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위의 시를 음각한 시비 ‘수선화’를 만날 수 있다. 시 ‘수선화’는 한 마디로 순수 그 자체를 노래하고 있다. 수선화란 물에 사는 신선, 꽃말은 자존이다. 추운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소리 없이 아무런 더러움도 없이 하얗게 피는 꽃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수선화의 짙은 향기는 가던 발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추사가 좋아했듯 옛 선비들은 이 꽃을 애지중지하여 키웠던 것이리라. 호근동 골목길과 추사 적거지를 걸으며 수선화 향기를 듬뿍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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